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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

Be Harmonious with each other

by samoa 2022. 11. 27.

서로 화목하라(막9:38-50)

 

오늘은 예수님의 제자 요한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요한이란 사람의 이미지는 부드럽고 좋습니다. 

미국 사람들 이름중에 john 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공항에서 John 하고 부르면 몇사람이 돌아본다고 합니다. 

 

존은 이미지가 좋으니까 많이 지은 것입니다. 

존이 처음부터 이미지가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편협했고 경쟁심이 강하였고 보복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초창기 별명도 우레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예수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박해하자 하늘에서 불을 내려 멸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초창기때는 요한이 과격했습닏. 나중에는 요한이 변화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가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귀신을 쫓아냈다고 하니까 요한이 금했다고 나옵니다. 

왜 함부로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예수님이 칭찬해 줄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38-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생각은 중간층에 대한 이해가 좋아야 합니다. 

우리편이 있고 대적이 있고 중간층이 있습니다. 

중간층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적으로 볼 것이냐 아닙니다. 끓어 않을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소리 없는 다수의 중간층이 있습니다.

이들은 배척할 대상이 아닙니다. 

 

행19- 마술하는 유대인들이 나와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악귀를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스가외와 스가와의 일곱아들이 있는데 이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도용해서 

귀신에게 명했는데 귀신이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고 너는 누구냐?

덤벼들어서 몸이 상하고 벗은 몸으로 달아났다고 나옵니다. 

우리도 귀신도 알아보는 참된 능력의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간다고 다 그 능력이 나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도 귀신이 알아주는 신앙으로 나가야 합니다. 

제대로 예수님의 능력을 가지고 나간다면 귀신도 알아준다는 것입니다. 

초창기에 요한의 모습을 보면 편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편만 되어야 지지하고 응원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좋은 관계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직장인들이 퇴사하게 된 이유중에 제일 큰 이유가

월급문제도 아니고 진급문제도 아니고 관계 문제라는 것입니다.

좋은 관계를 아니면 그 직장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능력 중에 능력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첫째로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한사람의 피훌림이 있을때 가능하게 됩니다. 

인간이 맺을수 있는 좋은 관계는 부모와 자식관계입니다. 

부모자식관계는 양자가 서로 좋은 관계로 만난것이 아닙니다. 

특히 어머니의 일방적인 피훌림 희생이 있기에 자녀들이 눈물흘립니다.

어머니 하면 눈물이 나고 어머니 하면 다 머리를 숙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방적인 피흘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관계는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훌림에서 이루어집니다.  

 

요10장에 보면 목자와 삯군에 대해서 나옵니다. 

목자와 삯군의 차이첨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요10:11-선한목자는 양때를 위해서 목숨을 버립니다. 

선한목자는 양때를 위해서 목숨을 버립니다. 피흘림이 있습니다. 

 

목자는 누가 임명해서 목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피흘림이 있을때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이득을 위해서 뛰는 사람은 삯군이 되는 것입니다.

피흘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목자가 되고 삯군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학교에 가서 공부하면서 자신은 선한 목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교회를 결정할 때 돈따라가고 편한곳으로 간다면 

내 전도 유망한 곳이 어디냐 한다면 100% 삯군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성도들도 저 사람은 손해보는 일은 절대 안한다면 삯군입니다. 

자기 이득을 위한 것이라면 삯군인 것입니다. 

섬김과 봉사도 자기 이득을 위한 것이라면 삯군입니다. 

그런데 피흘림이 있다면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피흘림입니다. 

좋은 목자가 되는 필요충분 조건은 피흘림입니다. 

사랑은 사실 피흘림입니다. 

 

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다 독생자를 주사 (피흘림으로 통해 )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은 피흘림입니다. 십자가는 대속해 주신 죽음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영혼을 살리는 영생이 있는 교회, 사랑이 있는 교회란

피흘림이 있고 사랑이 있을때 영혼을 구원하는 방주가 됩니다. 

 

기도도 좋은 사람 좀 만나게 해주세요. 하면서 기도합니다. 

좋은 사람을 찾아 교회도 옮깁니다. 

좋은 사람 만나야 좋은관계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 좋은 사람 찾아다닌다고 좋은 관계가 이루어 집니까?

왜 안됩니까? 자기 때문에 좋은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피흘림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에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교회 오는 이유도 피흘리기 위해서입니다. 

피흘림이 있을때 모두 사람과 좋은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피흘림이 중단하면 생명이 살아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요즈음 교회들이 모이는 것은 잘 합니다.

 

사실 예배 드리고 흩어져야 합니다.

흩어진다는 것은 피흘림입니다. 

너히는 세상의  소금되라고 하십니다.

나가서 녹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흩어지는 것은 피흘림입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이 능력주셔서 피흘리는 것입니다. 

요12: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피흘림이 있을때 영생이 나타나고 신앙생활이란 피흘리는 것입니다.

블리드에서 블래스가 나온 것입니다.

피흘림이 축복인 것입니다.

피흘림이 있을때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교회 왜 오십니까? 피흘리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노 크로스 노 글로리입니다. 

왜 이단입니까? 피흘림이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습니다.

앞뒤 제지 않고 무조건 잘된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근본 메세지는 피흘림입니다.  

 

어떤 성경공부를 해도 피흘림이 없으면 가짜 입니다. 

성경공부 내용은 피흘림입니다.

피흘림의 능력에 의해서 생명을 건집니다. 

가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피흘림이 있을때 조용해집니다. 

교회도 피흘림이 있으면 조용합니다. 

피흘림이 있으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피흘림이 있을때 소리도 없고 다 살아나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 지지 않으면 세상의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갈때 그곳에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인간의 노력과 애쓴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할머니가 침해 걸리지 않기 위해서 책을 사왔습니다. 

왜 이 책 사셨습니까? 나 건강해지려고 책을 사왔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도 치매 걸리지 않는 법, 그 다음날도 침햬걸리지 않는 법 사왔습니다. 

치매 책으로 못 이깁니다. 노력으로 안됩니다. 관리로 안됩니다. 

 

연세 드신분들 중에 건강 건강하면서 식단체크하고 혈당체크하고 더 빨리 갑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는 분들 보면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피흘리는 사람들입니다. 

어디가서 희생하고 섬기는 사람들이 싱싱하게 살아가십니다. 

내가 피흘리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좋은 관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최고의 인생의 답은 피흘림에 있습니다. 

피흘림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피흘림으로 편협한 사람이 넓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편협함은 죄악입니다. 피흘림이 있을때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두번째  요한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힘쓰고 애쓴것이 아니라 주님께 가까이 간 것입니다. 접근의 힘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오래 다녔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주님께 가까이 갔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까이 간 사람중에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 요한 이었습니다. 

요한은 주님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늘 가까이 갔습니다. 

변화산, 겟세마네, 성만찬에서도 대 제사장 뜰까지 쫓아 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했지만 십자가 아래에 요한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부탁한 것이 "내 어머니다" 요한에게 부탁합니다. 

 

우리가 애쓴다고 우리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주님께로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가까이 가면 주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 은혜받은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특징은 

주님께 가까이 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께 가까이 하는 것은 예배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에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괴박하고 편협한 사람이었지만 

피흘림을 통해서 좋은 관계를 맺는 훌륭한 사도가 되었고 

주님께 가까이 가므로 접근의 힘을 통해서

그는 너그러운 사람,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노력이 아니라 주님께 가까이 가는 접근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복음 중에 복음은 요한복음입니다. 

초신자들에게 추천하는 성경이 요한 복음입니다. 

요한이 쓴 성경은 요한복음, 요한1,2,3서,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은 과거 현제 미래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거 믿음에 관한 것이 요한복음,

현제 사랑으로 사는 것은 요한1-2-3서

미래에 대한 것은 요한 계시록입니다. 

 

요한의 변화는 피흘림을 통해서 이루었습니다. 

신앙생활이 공허하고 힘을 잃으셨습니까? 허무하십니까? 

요한에게 주신 은혜를 사모하면서 주님께로 가까이 가십시오. 

신앙의 본질은 피흘림입니다. 

요한은 주님께 가까이 가므로 해서 내면을 채웠습니다. 

우리도 요한 뒤를 따라가므로 편협한 사람이 아니라 

어떤 사람하고도 좋은 관계를 맺고 사는 넓은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을 실족시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아야합니다. 

손이 범죄하고 발이 범죄하거든 단호히 잘라 내라고 하십니다. 

두눈 가지고 범죄하거든 단호히 뽑아 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손발 가지고 두눈 가지고 지옥가는 것보다

없이 천국가는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고 불이 소금 치듯하는 곳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할수만 있으면 화목(하모니)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무시하거나 아프게 하거나 눈물 쏟게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소금입니다. 세상의 방부제입니다. 

또한 맛없는 세상에  살맛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편협하게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할수만 있으면 이웃들과 하모니를 이루면서 그들이 주님 만날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려 주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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