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막10:36-52)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소경 바디메오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는 장면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사람마다 요구가 다 다를 것입니다.
병든 분들은 낳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변화됩니까? 됩니다.
내적변화가 있으면 외적변화가 일어납니다.
제자들 중에 변화의 아이콘을 들자면 야고보를 들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중에 세 야고보가 있습니다.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있고
세번째 예수님의 젖동생 야고보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기도를 엄청많이 해서 낙타무릎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초대교회에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변화의 아이콘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변화가 잘 안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람을 기질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기질은 잘 변화가 안되지만 변화는 쓰임세입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다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많고 어설프지만 약점이 장점으로 쓰임받습니다.
쓰임새에 있어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으시길 바랍니다.
야고보는 두가지 장점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성숙한 결단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을때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아버지가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뿌리치고 따랐습니다.
단호한 결단력이 있었습니다.
둘째는 남자로서 야망이 있었습니다.
37-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야고보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하늘나라 가서도 힘있는 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관료체계에서도 좌의정 우의정 직책이 있었습니다.
왕의 가장 신임을 받는 의미가 컸습니다.
그러기에 나라에서 주는 힘도 컸습니다.
야고보가 나중에 주님 승천하시고 난 후에
초대교회를 이끌어 감에 있어서 기둥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주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으로 담임목사 역할을 잘 해 나갔습니다.
강합적이지 않고 파당없이 분열없이 잘 이끌어 나갔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찾아오실때 문을 두두리신다고 하셨습니다.
계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은 우리의 마음문을 강제로 열지 않고 자발적으로 열때까지 기다리십니다.
불같은 성격의 야고보가 사도들중에 제일먼저 순교를 합니다.
야고보가 변화된 다음에는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행11장에 야고보가 첫번째 순교자가 됩니다.
야고보는 구약의 아벨과 같은 사람입니다.
야고보는 말만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함으로 본을 보였습니다.
야고보는 죽었지만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세째, 야고보는 감성이 건강했습니다.
건강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지정의가 모두 치유받아야 합니다.
신앙의 출발은 감정입니다. 감정이 건강해야 합니다.
감정이 병들면 웃을수도 없고 울수도 없습니다.
감정이 건강하신 분들은 잘 웃고 잘 울줄 압니다.
소경 바디메오는 볼수는 없었지만 감정은 건강했습니다.
잠잠하라 했더니 더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크게 소리질렀습니다.
에수님이 너를 불렀다 하니
겉옷을 버리고 뛰어 나왔습니다. 그의 얼굴은 밝은 웃는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바디메오를 꾸찢는 사람들을 보면 잠잠하라고 합니다.
소경을 무시한 늦낌이 듭니다. 분노하는 사람들입니다. 조용히 해 하비다
신앙도 꽉 막혀있다가 어느 순간에 웃음이 나오고 그때 치유가 일어납니다.
상처 입은 분들을 보면 웃는 것이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이란 감정으로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면 감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에서는 감정으로 살고
교회 와서는 이성으로 삽니다. 따집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서는 이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와서는 감정적으로 따듯하게 살아갑니다.
화장실 낚서 이야기입니다.
신은 죽었다. -니이체-
니체는 죽었다. -하나님-
너희 둘다 죽었다 -청소아줌마- 아무데나 낙서하지 말라는 뜻이죠
청소 아줌마가 제일 건강한 감정의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압박감에 찌들려 있고 생활에 찌들려 있습니다.
병든 분들 보면 대부분 너무 책임감과 압박감 때문에 병을 얻습니다.
얼굴이 너무 심각하고 웃음을 잃었습니다.
병든 분들에게는 과거 재미있는 추억을 이야기 하므로 웃게 해야 합니다.
사람은 웃거나 울기 시작하면서 낳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님들이 자신들 잘못을 뉘우칠때 감정이 복받쳐 웁니다.
그때부터 요셉도 회복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는 일찍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 독하게 살아왔습니다.
이런 사람은 철저한 사람이 됩니다. 철저한 사람은 자신뿐 아니라
남들이 실수하는 것을 잘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런 루이스가
60이 넘어서 존 데입빗을 만나 교제를 합니다.
데이빗이 볼때 루이스는 웃을줄 모릅니다.
늘 살아남아야 하기에 치열하게 철저하게 살아갑니다.
감정이 매말랐습니다. 웃울줄 모릅니다.
그런 그에게 조이 데이빗이란 여성을 만납니다.
조이 데이빗의 진정한 충고로 루이스가 웃음을 찾게 됩니다.
감정을 표현할 줄 알게 되었고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눈물과 기쁨이 없고 화가 난다면 주님 앞에 나아가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중심에 원함을 확인하십니다.
51-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 바디메오에게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에게 원하는 것이 뻔하지만 본인이 원함을 확인하십니다.
기적이란 하늘의 능력과 땅이 맞닿을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땅에서 보내는 신호가 분명해야 합니다.
기도가 잘 안되는 것은 원함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는 이유도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사실 모르는 것입니다.
상처받은 분들은 만나면 나 상처 받았다 하면서
동정받고 위로받기만 원하지 진짜 일어서는것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지 않고 계속 누워있습니다.
위로만 원하지 원함으로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다시 일어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맹인이 보기를 원한다는 말이 쉬운것이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원함이 무엇입니까?
진짜 원함을 이야기 하지 못합니다.
포로된 사람들에게 뭘 해주길 원하니 물으면,
나 구원해 주세요. 이것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 원함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기 원함을 표현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되는 것이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흥되면 귀찮거든요, 파킹넛이 줄어들면 어떻게 하지
자기에게 오는 관심이 줄어들까 염려합니다.
오늘 이 주일에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내면을 진정으로 들여다 보셔야 합니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볼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영적인 가난함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순간에 모든 부분을 예수님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을때 대부분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별것 아닌것에도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맹인이 컽옷을 버리고 소리를 지르고 뛰고 길에서 따르고
알고 의지적인 행동을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바디메오 집사님)
초대교회에 훌륭한 집사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지정의가 아니라. 순서상 정지의 입니다.
감정이 건강해야 합니다. 웃을줄 알고 울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지식이 있어야 하고 의지가 생겨야 합니다.
이 아침 주님이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무엇 하여 주길 원하느냐 ?
인상이 밝아지길 원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지길 원합니다.
웃게해 주세요. 유머 있는 사람 되길 원합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듣기를 원합니다.
감정이 풍부해 지길 원합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길 원하십니다.
마음이 건강해 지길 원합니다.
찬송이 터지길 원합니다. 기도가 터지기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말하는 대로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소원대로 이루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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