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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

Overwhelming grace

by samoa 2023. 5. 20.

압도적 은혜(창20:1-18)

 

창세기 20장은 은혜의 장입니다. 

필리얀스가 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란 책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기독교의 독특성이 무엇이냐  "성육신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것이다. 로마신화에도 있다. 

아니다 부활사상이다. 이집트에도 환생사상이 있다. 그것도 아니다. 

C, S 루이스가 기독교의 독특성은 은혜에 있다 고 할때 

모두가 인정했다고 합니다. 

 

첫째, 은혜가 무엇입니까?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사실 은혜는 설명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냥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독특성입니다. 

 

세상은 정의과 공평을 추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은혜를 싫어합니다.  공평을 더 좋아합니다. 

세상은 똑같이 나누어 주면 말썽은 없습니다. 

 

그런데 가정에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이 혼자 다 벌어서 가족이 다 쓰더라도 기뻐합니다. 

본인보다 가족이 99%를 다 써도 불만이 없습니다. 

은혜를 모르면 기독교를 모르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것입니다.

은혜는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은혜가 필요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잘 변하지 않습니다. 변한것 같은데 반복해서 죄를 짓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찾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평소에는 정상인것 같은데 어떤 사건을 만날때 속이 뒤집어집니다. 

우리 모두는 비정상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비정상이기 때문에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부족하다 실패하고 연약하다는 것은 모두에게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하고 실패하고 반복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치사한 사람입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반복합니다.

깨우침이 없습니다.  네게브는 사막에 텐트를 칩입니다.

가나안과 블레셋과  국경선 그곳에 장막을 칩니다. 

여차하면 도망가려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가나안인데 그랄에 거합니다.

그랄을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아내 사라가 이뻐서 블레셋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빼앗아갑니다. 

우리교회 아내가 이뻐서 걱정하시는 분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것이 은혜이고 복입니다.  

 

사라나이 90세 임신한 상태입니다. 매력이 없습니다. 

아비멜렉이 물었을때 사라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형편없이 부족한 모습입니다.

이제 위기에 처했을때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7-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그런데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은 선지자다.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고 하십니다.  죄짓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그의 남편 아브라함이 기도해주어야 네가 살 것이다. 

잘한 것 하나도 없는데 아브라함을 높여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잘난척할 수 없습니다. 

만약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네게 속한 자들이 다 죽을줄 알아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한껏 높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 일하십니다. 

 

우리는 인과 응보 사상에 쇠뇌되어 있어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그랄에 거하는 양다리 인생인 아브라함을

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한껏 높여주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자격없는 아브라함을 세워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잘난척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감격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자격이 없음에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해 주십니다  

 

둘째, 은혜는 설명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서나 일하십니다. 

장소에 관계없이 섭리하시고 강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여전히 부족하고 형편없어도 높여주시고 칭찬하십니다.

그래서 은혜는 설명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너 자격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격을 얻으려고 스펙(자격증)을 쌓습니다. 

옆집 아이가 아무리 자격이 많고 똑똑해도 그 아이에게 유산 물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자식이  모자라고 머저리 같더라도 그에게 유산 물려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금수저들입니다. 축복의 통로들입니다. 

자녀이기에 사랑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인 것입니다. 

 

자격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우리는 종들이 아닙니다. 자녀입니다. 종의 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못생겨도 자녀입니다. 실력이 없어도 자녀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똑똑하고 잘생기고 잘난 사람들 많습니다.

그런데 불쌍한 것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바보같은 아브라함을 더 좋아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아버지라도 부릅니다. 

왜 그러냐고 따져도 소용없습니다. 

그는 나의 자녀다 내가 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은혜입니다. 은혜를 모르면 하나님을 모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하나님의 은혜가 흐릅니다. 

 

스캇펙이란 심리학자가 어느 한사람을 연구한 것이 있습니다. 

젊은 사업가이고 훌륭하고 성공하고 유명하고 멋진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시카코의 슬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릅니다. 

엄마는 시각 청각 장애인입니다. 아이를 키울수 없습니다. 

5살 될때에 정부에서 데려다 다른가정에 위탁교육으로 키웁니다. 

위탁교육도 어려워 3번이나 옮겨서 살아갑니다. 

사랑없는 양부모 무관심 속에 학대로 인해 집을 나오고 감옥에 갑니다.

15살에 뇌혈관이 터져서 마비가 되고 16살에 독립을 했는데 

강패 집단에 들어갔다가 감옥에도 몇년을 지냅니다.  

상처 , 역기능 장애 분노등등 더 이상 불행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현제의 모습은 너무 멋진 사람입니다.

성공한 사업가 자상한 남편 자상한 아버지 모습만 보입니다.  

이 사람 얼굴에 고생이란 흔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해석할 수 없어서 은혜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은혜라는 단어 이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왜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블랙박스입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은혜를 모르면 하나님의 원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기 까지

연단을 받아서 결국 아들 이삭을 낳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승승장구하고 너무 멋지고 멋지고 완전하고 완전하고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쓰시지 않으십니다.

집사라고 하면서 되게 지저분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끈질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 하나님이 쓰십니다.  

베드로도 예수님 부인하고 망치고 나서 쓰십니다. 

 

우리가 은혜를 달라고 할때 받을수 없는 것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회하는 이유도 은혜때문입니다. 은혜가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농부이십니다. 

가지에 열매 맺지 않으면 잘라버리신다(헬라어로 아이로)고 하십니다.

가위를 든 하나님이 연상이 됩니다.  

포도나무는 그냥 놔두면 가지들이 땅으로 쳐져서 깔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부가 가지를 들어주는 것도 아이로(=은혜) 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놔두면 죽는데 들어 주셔서 살아나고 열매맺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내 버려두면 개망신 당하는데

하나님이 들어주셔서 존귀하게 하십니다. 

이것을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를 원합니다. 

 

창세기 20장을 은혜 빼고 다른 것으로 해석하면 해석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할때 나에 대한 확신이 아닙니다. 

내가 충성할거야 내가 잘할거야 이것 가지고 안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인생이 은혜로만 해석이 됩니다. 

나의 나된것은 내 노력이 아닙니다. 은혜로 된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께 충성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째, 은혜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믿음이란 나에 대한 확신이 아닙니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연약한 나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보다 좋은 점을 찾아 말해주십니다. 

없는 것을 찾아 내어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뿌리가 있습니다. 아기때, 어릴적에, 소년 소녀때, 

은혜는 논리가 아닙니다. 

은혜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은혜를 붙들어야 진짜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언제 부르셨어요. 

아무 이유가 없을때 근거가 없을때 부르셨습니다. 

아무런 이유가 없을때 부르셨습니다. 

언제 우리를 의롭다 하셨나요. 내가 죄인 되었을때에 

아무 자격이 없을때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은혜 앞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일어서는 은혜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은혜 붙들고 사역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기 전에 전적인 은혜를 깨우쳐야 합니다.

내 능력도 아니고 내 노력도 아니고 자격도 아닙니다.  

믿음의 동사형은 주님께 다 맡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은혜를 알고 맡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리아산에서 아들 이삭을 다 맡깁니다. 

17살 난 백살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니까 드립니다. 

이삭은 내 힘으로 내능력으로 낳은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고 펄펄 뛰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할때 선입견 버리고 은혜로 대해야 합니다. 

여기 아비멜랙이 참 훌륭하다고 느껴집니다. (16절)

이 사람은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은 1000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정죄감을 주지 않습니다. 

남편인줄 알지만 민망하지 않게 오라비라고 불러 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살리는 쪽으로 이름을 붙이고 

자존심 상하게 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무너지는 쪽으로 망하는 쪽으로 붙이고

거짓 쪽으로 이름을 붙입니다. 

 

사람을 대할때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아끼는 사람으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기를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앙드레 김이라고 불러 주기를 원합니다. 

왜 김복만씨라고 부릅니까? 

끝까지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영혼을 은혜로 대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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