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회복 (창45:1-15 )
마귀가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대상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깨진 가정이 많고 병든 가정이 많고
정상에서 벗어난 역기능 가정이 많은 것입니다.
특히 역기능가정의 대표적인 가정이 야곱 가정입니다.
이 가정에는 부인이 네명이고 자녀가 12명이 태어났습니다.
또 편애가 있고 근친상간이 있고 살인 시도가 있고
말도 안되는 문제들이 일어났습니다.
한마디로 상처많은 깨진 가정입니다.
창세기 45장 이후부터는 야곱 가정이 회복이 됩니다.
이런 역기능 가정에서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나왔습니다.
아무리 깨진 가정도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깨진 가정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교회가 그런곳입니다.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 모여서
거룩한 교회를 이루는 곳입니다.
역기능 가정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이 거룩한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첫째 희생과 책임감이 가정을 회복시킵니다.
이 가정에서 굿즌일 힘든일을 도맡아 짊어진 사람이 네째 유다 였습니다.
유다의 역할로 이 가정이 일어납니다.
동생 요셉을 팔아버린 매정한 형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말하지 않고 덮어 놓습니다.
이런 일들을 다 덮어 놓습니다. 우리도 얘기를 안합니다.
덮어 놓으면 곰고 섞습니다. 새로워지지 못합니다.
다윗이 우레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서
우레아 장군을 전쟁터에서 죽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악하게 보셨고
그 뒤로 다윗 가정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다윗의 큰 아들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겁탈합니다.
압살롬이 자기 여동생을 간강한 큰형 암논을 죽입니다.
야곱 가정에서 네째 유다가 장남 역할을 합니다.
첫째 아들 루우벤은 큰 아들 역할을 잘 못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엄마 레아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여자에게서 태어난 루우벤도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이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루우벤이 기를 펴지 못합니다.
그리고 서모 빌하와 통간을 하므로 야곱의 미움을 받습니다.
첫날밤에 라헬인줄 알았는데 아침에 보니 레아입니다.
레아는 소라는 의미이고 라헬은 암양이란 뜻입니다.
루우벤은 성격은 좋았습니다.
동생 요셉을 죽이자고 했을때 루우벤이 적극 반대합니다.
착한 순둥이인데 남자답지 못하고 가족들을 힘들게 합니다.
동생들이 루우벤이 없을때 요셉을 장사꾼들에게 팔아버립니다.
나중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지파가 루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입니다.
둘째 시므온과 세째 레위는 폭력적입니다.
여동생 디나가 세켐 족장에게 간강을 당합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세켐 남자들에게 할레를 받아야 내동생 준다하고
막상 할레를 받은 세켐 남자들을 다 죽입니다.
행동이 폭력적인 사람과 말이 폭력적인 사람들은 못고칩니다.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면 가정이 살벌해집니다.
특히 여자가 폭력적인 가정은 남자들은 귀를 펴지 못합니다.
남자는 맞아도 창피해서 떠벌리지 못합니다.
모여서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있고,
모이면 안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모이면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모이면 악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작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흩어져서 일해야 합니다.
나중에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에 흡수됩니다.
레위지파는 제사장 지파가 되어서 다 흩어졌습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제사드릴때마다 평생 칼을 쓰는 일을 합니다.
제사때 쓸 양과 소를 잡을때 레위인들이 잡았습니다.
뭐든지 시작이 중요합니다. 한번이 중요합니다.
한번 시작한 것이 평생 직업이 될수 있습니다.
루우벤, 시므온, 레위가 행한 한번이 지파의 길을 결정합니다.
네째는 유다인데 머리를 많이 섰습니다. 생각을 많이 합니다.
동생 요셉을 형제들이 죽이자고 할때도 죽이지 말고 팔자고 합니다.
애굽 총리가 막네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 할때도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해서 남겠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책임을 집니다.
가정을 지키는 사실상 장남노릇을 유다가 합니다.
유다가 집을 나가 가나안 여인과 사이에서 세 아들을 낳습니다.
첫째가 엘, 둘째가 오난, 세번째 셀라 였습니다.
큰아들 엘이 결혼하여 다말이 며느리로 들어오는데 자식없이 엘이 죽습니다.
그래서 둘째 오난이 형수 취수제로 들어갔는데
오난이 질외사정을 악하게 보시고 하나님이 죽이십니다.
유다가 볼때 다말하고 살았던 두 아들을 잃습니다. 세째 셀라를 주기가 두려웠습니다.
세째 셀라가 너무 어리다고 다말에게 친정에 가서 있으라고 합니다.
며느리 다말이 셀라가 장성했는데도 신랑으로 주지 않으니까
다말이 창녀로 분장해서 길옆에 있다가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해서
동침을 해서 쌍둥이를 낳습니다.
며느리가 창기 노룻을 햇다는 소문이 나니까 죽이라고 합니다.
그때 다말이 잠잘때 삯으로 받은 유다의 도장과 지팡이를 내 놓으며
유다가 회개합니다. 네가 나보다 의롭다고 시인합니다.
이때 유다는 십자가를 만난 것입니다.
유다는 다시 일어섭니다. 한마디로 유다는 방황을 멈춥니다.
가나안 땅의 흉년으로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 10명의 형제들이 갑니다.
가는데 애굽의 총리 되어 있는 요셉이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유다가 아버지 야곱을 설득해서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갑니다.
베냐민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습니다.
이때부터 야곱 가정의 장남역할을 유다가 하기 시작합니다.
가정을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 희생합니다. 바로 유다입니다.
유다가 가정을 치유합니다. 유다의 가문에서 메시야가 나오고 왕이 나옵니다.
유다는 책임을 지고 희생하는 삶을 사니까 후손들도 따라갑니다.
지금도 책임을 지고 희생하는 유다지파에서 지도자가 나옵니다.
둘째 눈물이 가정을 회복시킵니다.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해와 달이, 열한별이 곡식단이 절을 합니다.
요셉은 아무리 힘들어도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꿈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꿈은 좋은 것이기에 마귀가 항상 공격합니다.
꿈은 말씀이기에 항상 방해가 있습니다.
요셉은 꿈을 붙들어서 총리가 된 것입니다.
가정의 회복은 꿈만 붙든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가 베냐민 대신 남겠다고 합니다. 그 소리 듣고 요셉이 웁니다.
창세기 45:1-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2-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강인하게 고난을 이겨왔던 요셉이 이제 통곡의 사람이 됩니다.
꿈만 있고 눈물이 없으면 냉혹한 목적주의자가 됩니다.
하나됨을 이루지 못합니다. 울지 않으면 하나되지 못합니다.
진정한 하나됨의 능력은 눈물입니다.
C, S, 루이스 일찍 어머니를 잃고 울어서는 안된다고 알고
60살이 될때까지 울어보지 못했습니다.
냉혹안 이성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기 암환자 64세 조이 데이빗멘 여자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됩니다.
조이가 볼때 루이스가 이상한 것입니다.
옥스퍼드대학 교수인데 정상이 아닙니다.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 것입니다.
운적이 없는 것입니다. 조이를 만나고 나서 눈물을 배웁니다.
루이스가 사랑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루이스의 시각이 달라진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가 쓴 책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요셉은 의지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안울었습니다.
형 유다를 만나서 울음이 터졌습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니까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상처 치유받는 통로는 2가지 입니다.
눈물을 회복할때와 축복을 통해서입니다.
교회에 눈물이 터질때 교회가 부흥이 됩니다.
눈물이 성령이 주시는 싸인입니다.
눈물이 임하면 다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도 울보였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볼때 웁니다.
이 모습을 볼때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의 왕이 되어 달라고 합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통일 왕국에서 33년을 통치 합니다.
세째는 믿음의 시각이 가정을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가 팔리고 종이되고 감옥에 들어간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꿈을 꾼것도 하나님의 인도이고
바로가 총리가 세운것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에게 유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불신의 사람들은 자기가 실패하고 망한 것을 너 때문이라고 합니다.
너 때문이라는 말 한마디로 가족간에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가정들을 바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가정마다 어려움과 상처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신앙고백을 이끌어 내시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형제들의 관심은 요셉이 살아 있다는 것과
총리가 되었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요셉의 관심은 빨리가서 아버지 야곱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아직도 흉년이 5년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서 민족을 만들어서 가나안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볼때 하나님의 섭리를 믿은 것입니다.
지금 뭔지 모르지만 미래에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실것을 믿기에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회복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의 믿음도 장차 가족들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지금 입장에서 모든 것을 감사하고 가는 것입니다.
너무 완벽주의 자가 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가정을 깨고 흔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마귀를 이기는 것입니다.
역기능 가정이더라도 섭리의 신앙을 가지면 고칠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마음이 상한자를 고치시는 주님
'설교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Overwhelming grace (0) | 2023.05.20 |
---|---|
Two masters (0) | 2023.05.13 |
The Friend of God (1) | 2023.04.29 |
life is a passive form (1) | 2023.04.22 |
The benefits of spirituality (1) | 2023.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