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수동태다 (창16:1-16)
인생은 수동태입니다.
믿고 맡기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15장에서 아브라함과 일방적인 언약을 맺었습니다.
짐승을 쪼깨놓고 아브라함을 재껴놓고
하나님 혼자 일방적으로 횟불로 지나가십니다.
언약을 할때 쌍방적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아이러니 하게 서로가 책임감을 가질수 있지만 계약이 깨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일방적일때 오히려 약속이 지켜진다고 합니다.
일방적인 계약을 할때 계약자가 선하거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계약이 100%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계약을 지킬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인 계약을 하셔서 사랑을 쏟아 붓습니다.
사람은 압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계약은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나를 사랑하십니다.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쌍방적인 계약에 묶여서 사는 것은 안좋습니다.
네가 잘하면 나도 잘 할거야, 네가 안하면 나도 안해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를 받아서 살아가야
다툼없이 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족간에도 쌍방적일때 다툼이 일어납니다.
성경은 쌍방적인 것은 율법주의입니다. 조건입니다.
은혜는 일방적입니다.
내가 압도적인 은혜를 가지고 쏟아 붓는 것입니다.
화목하는 가정을 볼때 어떤 한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압도적 은혜를 쏟아붓습니다.
여자들이 결혼하기 전에 꼭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왜 나랑 결혼하려고 하는데, 동기가 뭐야?
너를 통해서 사랑을 배우려고 ???
여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대답이었습니다.
여자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서 결심했다고 할 줄 알았습니다.
너 없이는 못살것 같아서 결심했다고 할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십니다.
무슨 조건때문에 사랑하지 않고 무조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너만 보면 즐겁고 사랑스럽다고 하십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래의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자기가 정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가나안에 거한지 10년이 된 시기였습니다.
아브라함은 10년이 지났음에도 믿음이 성숙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85세입니다. 기다릴만큼 기다렸습니다.
내가 정한 시간에 응답해 달라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10년 안에 이루어 달라고 때쓰듯이 기도할때가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생일이 자나면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며 자기가 정하는 대드라인이 생일일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이번 생일 까지만 살아야 겠다고 시간을 정합니다.
베트남 전쟁때 포로들이 1-2년안에 다 죽는 답니다.
먹을 것도 없고 환경도 어려워서 죽는답니다.
근거없는 희망 과도한 희망을 바라다가 안되면 낙심합니다.
포로들이 이번 부활절에 크리스마스에는 풀려 날거야 기대합니다 .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해서 죽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오히려 희망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때에 맡기고 오늘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죽지 않고 오히려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스탁데이 페러독스 라고 합니다.
이런 희망을 자기가 정한 희망 고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가짜 희망을 만들어 놓고 속고 살아갑니다.
누구나 자기가 정한 시간이 있습니다.
사라의 단정함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시지 않기로 하셨다라고 단정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합니다.
1-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애굽 여인 하갈이 등장합니다.
하갈이라는 애굽여종은 사라에게 주신 축복의 손길이었습니다.
10년전 애굽에 내려 갔을때 얻은 선물이었습니다.
하갈을 볼때마다 내가 불순종 함에도
나를 보호하신 손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갈을 볼때마다 하나님 잘 믿어야 된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사라가 자기가 정한 시간에 응답이 안되니까
편법을 쓰다가 올가미에 걸립니다.
불순종할 때 잘되는 것이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동침했는데 바로 임신을 합니다.
이 일로 사라에게 멸시가 왔습니다.
아브라함을 설득했지만 무모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하는일 사람이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인정하고 믿고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래의 믿음이 흔들흔들 하였습니다.
편법을 썼는데 너무 잘됩니다. 이것은 잘된것이 아닙니다.
이때부터 아브람 가정에 찬바람이 붑니다.
4-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위아래 질서가 깨지고 멸시가 왔고 학대가 왔고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가 좋았는데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5-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평화롭던 가정이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6-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아브라함도 나몰라라 하고 당신 뜻대로 하라고 합니다 .
사라가 하갈을 학대하니 하갈이 도망을 합니다.
크리스찬 가정에서 사람을 학대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믿음의 모습 행복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잠언 10:21-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부작용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시지 않으신다.
믿음이란 말씀 붙들고 끝까지 가야 합니다.
말씀을 외면하면 삶이 뒤죽박죽이 되어집니다.
내가 정한 데드라인 믿지 말아야 합니다.
응답이 느리다고 내가 앞서가면 안됩니다.
설득력 합리성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멸시가 오고 학대가 오고 도망이 나옵니다.
편번 꼼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째, 하갈의 순종을 통해서 배워야합니다.
도망가는 하갈입니다. 우리도 도망갑니다.
세상에서 도망치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도 도망갑니다.
가인도 도망갑니다. 요나도 도망갑니다 . 탕자도 도망갑니다.
부모로부터 떠나서 혼자사는 청소년들 가출하는 사람들
남편으로부터 도망하고 아내로부터 도망하고 주인으로부터 도망하고
교회로부터 도망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도망하는 쓸쓸한 하갈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디로와서 어디로 가느냐?
8-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돌아가라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돌아가라
하갈이 듣고 싶은 대답은 내가 가서 복수해 줄께 원한을 풀어줄께
그러나 여주인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하갈이 이 말씀에 순종합니다 .
축복은 아브라함에게서 나오기에 돌아가야 너도 복을 받을수 있다.
하갈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엘로이 감찰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돌보시는 하나님 ,
셈 이름을 브헬라헤로이=나를 살리신 우물
어려움 가운데 나를 살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다.
15-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이스마엘=사무엘, 하나님이 들으셨다 란 뜻입니다.
하갈의 믿음은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는 믿음이었습니다.
첩의 위치, 종의 위치를 받아들이고 인정한 믿음입니다.
지저분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지저분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방해받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런 하갈을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우리는 방해받지 않는 길로 가서 효율성을 이룰려고 합니다.
인생이란 방해받는 길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생은 직선이 없습니다. 곡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인생이 직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누군가 희생해 주었기 때문에 직선이 된 것입니다.
하갈의 믿음이란 방해받는 것을 받아드린 것입니다.
아이를 낳아 보세요 얼마나 방해가 됩니까?
그러나 그것이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삶입니다.
하갈은 첩으로 사는 것이 자기가 원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내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인생은 수동태입니다.
내 인생을 하나님께 던져버리십시오.
내가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저분한 길을 가라고 하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나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내가 내 인생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아름다운 열매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맡기면 내 삶의 지평이 확장되고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거룩한 인생이 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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