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요약

Changed person

by samoa 2024. 9. 28.

변화된 사람(요한복음 21:15 - 25)

 

사람이 변화될 수 있습니까? 

좀 달라질 수 있어도 완전히 바뀌어지는 것은 어렵습니다. 

사람은 절대로 변화가 안된다고 합니다. 

또한 사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힘들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킬수 있습니다. 

이것이 있어서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예 안 변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잔소리가 사람을 변화시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세상 사람들은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서

한번 배신한 사람은 아예 버려버립니다. 

한번 주인을 문 개는 또 문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인을 문개는 죽여 버립니다. 

세상 논리는 냉정하고 가차 없습니다.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세컨찬스를 주십니다. 기회를 주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고 저주합니다. 

정말 다시 볼수 없는 사이가 됩니다.  

복음서에는 이 배신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예수님을 세번 저주하자 마자 닭이 웁니다.

주께서 고개를 돌려서 베드로의 눈과 마주칩니다. 

현장을 들킨 베드로의 심정을 상상을 해 보십시오. 

내가 어떻게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런 것을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다시는 예수님 앞에 설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를 다시 세우셔서

기둥같은 인물로 수제자로 쓰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트라우마에서 회복시키십니다. 

예수님이 회복시키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안됩니다. 

두번째 관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교제를 회복시키십니다. 

세번째 일을 주십니다.  사명을 주십니다. 

 

1. 사랑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주님에게 능력 없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제자들 중에 능력있는 제자들은 없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지금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묻습니다. 

주님은 사랑만 체크 하십니다. 

사랑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베드로의 자세는 나는 말할 자격도 없습니다.

주께서 아십니다.  내 마음 나도 모릅니다.

옛날 같으면 호언장담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주께서 아십니다.  속일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이 부드러워 졌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로 하여금 할말을 하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변화 되었는지 아닌지 알수 있는 징표가 

언어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언어가 부드러워집니다. 

말투를 들어보면 변화된 사람인지 아닌지 알수 있습니다. 

물론 기가막히게 꾸며서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착한척 회개한척 진실한척 겸손한척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늘 부족합니다. 늘 넘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직 주님만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내 중심에서 터져 나오는 사랑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란 내가 성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사랑이 있으면 그 속에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나는 주님께서 맡겨준 양때들을 사랑하는가? 

 

2. 관계 맺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좋은 관계를 맺게 하십니다.

좋은 관계란 그 고리가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예수님 관계가 깨졌습니다. 

이 깨진 관계를 회복시키십니다.

깨진 의를 회복시키십니다. 

과거나 미래를 꺼내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지금 나를 사랑하니? 묻습니다. 

내가 지금 주를 사랑합니다.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할 말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사람은 타락했다는 것은 존철살인(寸鐵殺人)'을 합니다. 

상대방을 쉽게 정죄해서 죽인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방법은 상대가 할말을 못하게 합니다.

빠져나갈 구멍을 막습니다. 사람은 잔인합니다. 

오직 했으면 쥐를 몰때도 도망갈 구멍을 주고 몰라고 하는 것입니다. 

틀린말은 없는데 그 사람 앞에서는 내가 죄인이 됩니다. 

그 말투가 정죄입니다.  그러므로 관계가 다 깨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상대로 할말을 하게하고 끄집어 내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마르케스(콤롬비아 작가)가 쓴 작품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부가 겟마을 에서 살아갑니다. 

남편이 배타고 고기 잡으러 나갔는데 보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다 죽었다고 잊으라고 합니다.  

남편의 친한 친구가 위로해 주려고 여러번 방문중에 

남편 친구와 잠자리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죽었다던 남편이 살아 돌아옵니다. 

아내가 머리가 띵합니다.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한동안 침묵속에 살아가다가  아내가 고백합니다. 

아내는 마음의 짐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나가 회개도 합니다. 

세월이 10년이 지난 어느날 남편에게 힘들게 말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면서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아내의 고백을 들은 남편은

"괜찮아 나는 상관없어 하면서 방으로 들어갑니다.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아내가 충격을 받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따라가 당신은 나를 용서한 것도 아니고

사랑한것도 아니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할말이 없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야"라고 소리칩니다. 

아내를 사랑을 했다면 남편도 아파해야죠, 

 

예수님은 배신한 베드로에게 할 말 있게 하십니다. 

요8장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이런 여자는 율법에 돌로 치라고 하였나이다 .

당신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주님은 그 여자에게 하나도 질문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하신 방법은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처라.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갑니다.  마지막에 여자와 예수님만 남습니다. 

그때 너를 정죄하는 사람들이 있느냐? 

없나이다.   입을 열게 말하게 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아라. 

 

주님이 베드로에게 너 그때 나를 욕하고 저주까지 하는 것 봤다. 

이런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닭 이야기도  불이야기도 안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지금 나를 더 사랑하니?  주께서 아십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 오는 곳입니다. 

뻔한 소리를 하지 마십시오.  정죄하지 마십시오. 

유구무언인 사람들이 오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과거를 묻지 마세요. 

아픈것 묻지 마십시오. 뻔한 이야기 하지 마세요. 

그런 이야기 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코너에 모는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용서받은 사람인데 누구를 정죄합니까? 

관계가 회복되면 대화가 열리고 사귐이 있으면 회복이 됩니다. 

 

안이숙 사모님이 쓴책에 "그럴수도 있지" 말이 나옵니다. 

사람은 다 그럴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야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 피흘려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위의 사람들이 바리새인처럼 정죄하고 

공격하고 허물을 들추어 내고  말을 아프게 해서 그런것입니다. 

누가 바리새인 입니까? 그 장본인이 내가 그런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할 말을 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말문이 열려야 회복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째 회복은 사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내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 내양을 먹이라.

노인들은 죽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죽을 준비는 안하고 주식이야기 하고 

어느곳에 땅사면 땅값오른다고 이야기하고 

그래서 나이들면 친구가 중요합니다. 

나이들면 외롭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친구들이 떠나 갑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하고 친구할 수 있다면

잘 늙은 것이고 잘 준비된 사람입니다. 

 

제일 잘 준비된 것은 할일이 있는 것입니다. 

할일 없는 사람은 가장 처량한 사람입니다.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시키려 할때  할일을 안주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사무실에 책상 하나만 덜렁 주면  몇개월 출근하지만 

6개월 넘지 못하고 다 사직서 쓴다고 합니다. 

 

베드로에게 내양을 치라. 내양을 먹이라. 

사람이 슬럼프 빠질때 일을 맡기면 살아납니다. 

사람은 일하면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치있는 일을 할때 생기가 도는 것입니다. 

용서한다 하면서 아무일도 하지말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사람은 일하면서 회복되는 것입니다. 

나같은 죄인도 일할수 있습니까? 

 

우리 모두 무조건 격어야할 길이 있습니다. 

고난, 죽음, 부활입니다. 

믿음 가지고 고난의 길 가는것입니다. 

믿음 가지고 죽음의 길 가고 부활의 길 가는 것입니다. 

믿음 가지고 네 뜻대로가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것입다. 

신앙이란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18-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신앙이란  예수님 말을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고난도 짊어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내가 죽음도 내가 정하는 것 아닙니다.

죽음도 주님이 정해 주십니다. 

고민할 것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일을 잘하는 길은 듣고 따르면 고난도 영광이고

죽음도 영광이고 부활도 영광입니다. 

내 편한길 평탄한 길은 영광이 아닙니다. 

 

사명의 길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입니다. 

저 애는 어떻게 되냐고 묻는 것입니다. 

남이 어떻게 되든 뭘 그렇게 관심을 갖습니까? 

남의 시선에 너무 관심두지 마십시오. 

너는 나만 바라보고 나만 따르라고 하십니다. 

 

20-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남 신경쓰지 말고 너는 나만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사명을 이룰때 방해되는 것은 사람이 보일때입니다. 

친구 보지 말고 자신의 상처 바라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 붙잡고 직진 하라고 하십니다. 

 

말씀충만, 성령충만하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주님만 보일때 회복된 인생 변화된 사람이 되어서  

쓰러진 자를 일으키고 격려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크게 쓰임받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설교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God's wrath  (7) 2024.10.12
Proof of a Changed Heart  (9) 2024.10.05
Free yourself from Guilt  (0) 2024.09.21
Blessings after the resurrection  (4) 2024.09.14
When the Kingdom of God come  (0) 2024.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