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요약

Who drank the water of life

by samoa 2024. 2. 17.

생수를 마신자 (요4:1-15)

오늘 본문은 왜 예수님이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셨나?

왜 하필이면 유대인들이 피하는 사마리아로 가셨나?

유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수근 수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숫자에 약합니다. 숫자로 경쟁을 시킵니다.

반면 사람은 인기에 약합니다. 승부욕이 강합니다.  

율법에 철저한 바리새인들이 충동질 했습니다.

시기심 있는 사람들이 시기심을 유발합니다. 

사람은 비교에 약해서 비교로 사람을 누릅니다. 

여론을 불러 일으킨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1. 예수님은 왜 유다를 떠나 갈릴리로 가셨나?

경쟁이 심한 유대 사회에서는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영혼들에게 상처주지 않으시려고 유다를 떠나셨습니다.

성숙한 인격의 특징은 상처주지 않고 사역하는 것입니다. 

침례요한 힘들게 사역하는데

나때문에 더 어려움을 받는것을 원치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준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것입니다.

예수님은 경쟁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1-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침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예수께서 친히 침례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바리새인들은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경쟁시키고 시기심 충동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하면서도 세상 논리를 따라갈때가 있습니다. 

제자들도 누가 높으냐 누가 오른쪽에 앉겠느냐 하며 눈치게임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도 예수님이 안보이고 사람을 따라갑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사역하지 않겠다. 

남의 사역하는 터에  교회 세우지 않겠다. 피했습니다. 

양 도둑질 하지 않겠다.  지금도 널려 있는 것이 불신자들인데 

교회에서 양을 도둑질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단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 중에 연약하고 굳세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이상한 승부욕이 있습니다. 뭐든지 이기려고 합니다. 

십자가 본질이 십자가 지고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승부욕이 있습니다.  스포츠 분야, 공부, 제품등

그런데 나는 져본일이 없다고 하시면 방향이 틀린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자아가 죽어서 지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적그리스도의 모습이 나옵니다. 

적그리스도의 특징은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교회 와서도 이기려고 한다면 그 사람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절대 양보 안하고 이기려고 한다면 거짓 그리스도인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경험이 있고 진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양보하는 일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경쟁 때문에 사람의 삶속에는 늘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갈등의 배경에는 힘겨루기와 손익이 있습니다.

양보하면 풀리는데  그것을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엄청 받았기에 져도 되는 것입니다. 

손해 보면 더 좋은 것으로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본질은 죽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경쟁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바보처럼 속고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2. 예수님이 왜 사마리아 땅으로 가셨나?

사마리아 사람들을 유대인들이 상종을 안했습니다. 배척했습니다. 

왜냐하면 앗수르가 정복해서 혼혈정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왕따를 당했습니다. 얼마나 상처가 컸겠습니까?

옛날 거란족 몽골족들이 우리나라 처녀들을 잡아간것과 같습니다.

4-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He had to go thought samaria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하고 상종을 안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혼혈족이기에 유대인들이 꺼려 했습니다. 

예수님의 여행 계획속에 사마리아 여인을 구원할 뜻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일부로 사마리아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찾아가시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원하는 곳만 가면 안됩니다. 

원하지 않는 곳도 가야 합니다. 나쁜 곳도 가야합니다. 

선교도 나와 상관없는 곳으로 갑니다. 

예수님은 약한 사람들을 찾아가시는 분입니다.

우리도 찾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수가성에 가셨는데 시간이 오정 12시였습니다. 

유다에서 아침 6시에 출발해서

사마리아 우물가에 12시에 도착했스니다.

6시간 동안 걸어오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지치셨습니다. 

우물가에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와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기피증이 있습니다. 

남성들에 대한 기피증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자에 대한 상처가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동족도 만나기 싫어서

12시에 물길러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남자이면서 유대인 이어서 쌀쌀맞게 대했습니다.

이런 여자를 만나시려고 친히 사마리아를 찾아 가셨습니다. 

이 여자는 당당한 것이 하나도 없는 약자였습니다.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이런 약한 여자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을 정중하게 대했습니다. 존중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충고하지 않습니다. 훈계하지 않습니다. 

설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물좀 달라고 하십니다. 조심스럽게 접근합니다.

구원은 선물임을 알려 주십니다. 노력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생수 되심을 알려 주십니다.  쉬운말로 말씀하십니다.   

이유는 이 영혼을 건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런 태도를 닮아야 합니다. 

우리가 낮선 사람을 전도하려고 할때 예수님의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삭게오에게 가서도 충고하지 않습니다. 

삭게오는 자기가 이미 죄인인줄 압니다. 부끄러움을 알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이 네 집에서 유하여야겠다고 하십니다. 

그 집에서 하루 묵는다는 것은 나는 너를 가족으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삭게오는 마음문을 열고 남의 것 토색한 것은 4배로 갚겠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남의 것 강탈하거나 빼앗아 살지 말아야 합니다. 

재산의 절반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내 놓겠다고 합니다.

우리 이웃의 가난한 사람을 못본체 하지 않아야 합니다.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다고 하고 저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도 너를 정죄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가서 

다시 죄를 짓지말고 살라고 하십니다.

예수 믿는 다고 하면서 계속 간음하고 죄를 짓는다면 가짜 믿음인 것입니다. 

 

고전9:20-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사도 바울이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설명합니다.

상대에게 맞추어 줍니다.  대상자의 수준으로 내려 갑니다.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의 수준에 낮추어서 말을 하십니다. 

수가성 여인에게는 물에 대한 질문을 하십니다. 

수가성 여인의 관심사가 물이니까 물로 접근하십니다. 

구원은 선물이라고 하십니다. 구원은 생수같다고 하십니다. 

배워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뭘 지켜서 얻는 것도 아닙니다. 

 

3. 예수님이 생수라는 것입니다. 

1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4-내가 주는 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자신이 생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공부해서 아는 대상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마시면 목마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셔서 말씀하시는 대로 따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솟아나는 생수이시기에 목마르지 않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고 획그닥 바뀝니다.

자신의 상처많은 과거를 잃어버립니다. 자신감이 생깁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그물에 걸려 들었습니다. 말씀에 곧힙니다. 

생수를 마신자는 영이 살아난 사람인 것입니다.  

물동이를 던져 버리고 그동안 외면했던 동네로 달려가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보라고 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가 열렸습니다.  말씀이 들리는 은혜가 임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이 최고의 은혜, 구원받는 은혜인 것입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삶에 변화도 없고 기쁨도 없고 생수도 없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리시는 귀가 열려서 사마리아 여인처럼 목마름이 없는 

이웃들과 하나되고 좋은 소식을 나누는

거듭난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설교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joy and tears  (0) 2024.03.02
A life without fatigue  (1) 2024.02.24
Come into the light  (0) 2024.02.10
The way the spirit lives  (0) 2024.02.03
The Person who inspires  (1) 202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