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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

The Person who inspires

by samoa 2024. 1. 27.

감동을 주는사람(요2:13-25)

 

오늘 본문은 성전 정화 사건입니다.  

장사치들 내어쫓고 환전상들 내어 쫓았습니다. 

왜 이런 일을 행하셨을까요.?  변화를 위해서일까요?

당신께서 성전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21-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1. 잘못된 성전관이 있습니다. 

성전을 본당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솔로몬 성전터에 지금 이슬람의 모스크가 있습니다. 

성전에는 뜰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뜰-남자들만 가는곳,  여인들의 뜰이 있습니다. 13개 헌금함,

이방인의 뜰이 있습니다. 믿는데 할레 받지 않는 사람들이 가는곳,

할레를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예배하는 곳이 이방인의 뜰입니 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내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성전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여자나 남자나. 있는자나 없는자가 

평등해야 하는 곳이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성전은 성전 역할을 하지 못하기에 헐어 버리라고 하십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환전상들의 상을 뒤집어 엎었습니다. 

환전상이 생겨난 것은 멀리서 예배 드리러 올때 양과 소를 (신명기 14장)

동행하기가 어려워서 돈을 가져와서 성전 주위에서 제물을 사서 드립니다.

그리고 헌금도 아무 돈이나 드리지 않않고

성전에서만 사용하는 돈으로 바꾸어서 드렸습니다.

돈을 바꾸는데 환전상들은 이문을 남겨서 성전돈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런 상인들이 제사장과 결탁해서  성전 문턱까지 침범했습니다.  

 

예수님이 왜 성전을 정화하셨을까요?. 

사실 성전은 장소나 건물이 아닙니다. 

성전은 예수님 자신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라 3일 후에 다시 세우리라. 말씀하시니까 

이 성전은 48년동안 지은 것인데 네가 3일만에 다시 짓는다고???

그런데 이런 개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재한하셔서 인간을 만나 주시는 곳입니다. 

인간들을 위해서 자신을 재한 하셔서 임재해 주시는 곳이 성전입니다. 

 

성전은 다윗의 헌신으로 솔로몬이 건축했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이 이 건물에만 있을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역대하6:18-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그래도 이곳에 와서 기도하고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늘에서 들으시고 구원해 달라고 합니다. 

역대하6:28-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들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거나를 막론하고

29-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30-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며 사유하시되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의 모든 행위대로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아심이니이다

 

역대하7:13-혹 내가 하늘을 닫고 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14-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15-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성전 낙성식때 솔로몬이 기도한 내용입니다. 

성전의 기능은 속죄하는 기능과 성전에서 새사람 되어서 새생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전 개념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2. 성전이 장차 오실 예수님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속죄사역을 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죽음을 깨고 부활하셨습니다. 

성전되신 예수님이 누구든지 성전에 나오면 받아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나를 살리셨다.  속죄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속죄사역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십자가를 증거하고 

속죄하신 주님을 증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나오면서도 벌벌 떤단면 속죄의 확신이 없어서 입니다. 

 

그리고 속죄받은 영혼은 새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과 함께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생명의 삶, 거룩한 삶,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용서받은 죄인들입니다. 

돌아온 탕자들인 것입니다. 누구를 손가락질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삶이란 선악과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선악과로 내가 판단하고 사는 것은 사망의 삶입니다. 

생명의 삶이란 희생하고 섬기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분쟁이 물러가고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 

 

미니아 폴리스에서 아틀란타까지 가는 비행기에  

아기 엄마가 20개월 된 어린아기를 데리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기압 차이가 나니까 아이는 울기 시작합니다. 소리도 큽니다.

모든 기내 승객들이 짜증들이 증가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모니카도 어쩔줄 몰랐고 배안에는 곧 태어날 동생이 있었다. 

한 근처에 있는 신사가 다가와 아이 이름이 뭐예요, 눅크라고 합니다. 

그래요 나의 아들도 눅크인데 눅크들은 부모 말을 잘 안듣나 봐요.

리드라는 신사는 눅크를 돌봐 주어도 되느냐고 물었고  

리드(갈대)는 눅크라는 이 어린 아이를 안고

2시간 30분 동안 선체로 달래 주었습니다. 아이도 울음을 그치고

기내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람의 섬김을 보고 모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안드레아라는 고객이 너무 고마워서 리드에게 양해를 얻고 

아이를 안고 섬김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려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감동시켰다. 

행복이란 무엇이냐? 이렇게 섬기며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모습이 성령 안에서의 능력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할 일이고 사명인 것입니다. 

성전이 뭐예요. 속죄함 받는 곳입니다. 

죄인들이 와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곳입니다.

크리스찬의 삶이란 세상 속에서 소금처럼 녹아들어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리드처럼 이웃들 속에 들어가서 섬기는 삶을 살아가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한 삶인 것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이웃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못 느끼니까  무엇인가를 절대화 시킵니다. 

 

3. 주님이 임재하신 곳 바로 우리들이 성전입니다. 

15-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익숙함이라는 것이  때로는 독이 됩니다.  자꾸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나그네로 살라고 하십니다. 

익숙함이란 질서를 줍니다.  루틴입니다. 남성적입니다. 

여자는 자주 바뀝니다.  아침 저녁 감정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질서를 줍니다. 

질서를 지킨다고 하면서 자기 욕심을 채웁니다 . 

교회의 조직도 때로는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낮선 곳으로 이동시키고 이사도 시키고

익숙함을 깨버리십니다.  

하나님이 절대화 되어야 하는데 인간이 세운 전통이 절대화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본질입니다.  이름의 뜻이 있습니다. 

기묘자라. =놀라움,  모사=카운셀러, 정리가 됩니다. 

전능하신분=문제해결  주님이 체험되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언제나 받아주시는 아버지 사랑,

샬렘=평강의 왕이십니다. 

주님 앞에 오면 버림받지 않았다는 느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저씨로 믿으면 안됩니다. 아버지 하면서 안겨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본질입니다. 

 

찬양하다가 틀릴수 있습니다.

그런데 큰 소리치고 분위기 싸하게 만들고 

틀릴수 있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찬양이 절대화 하면 안됩니다. 

평안이 있고 감동이 있으면 틀려도 괜찮습니다.  

우리 교인들이 온전하지 않습니다.  다 품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가 3년만 되면 목사님을 내어 쫗았다고 합니다. 

새로오신 목사님이 교회에 오셔서 왜 그렇게 싸우세요. 하니까 

한 장로님이 다 잘하려고 좋은 교회 만들려고 하다가 싸운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러면 앞으로 3년동안 우리 잘 하지 맙시다. 

무슨 논쟁이 일어나려고 하면 잘 하지 맙시다. 절대화 하지 맙시다. 

교회 본질은 화평입니다.  부부도 잘하려고 잔소리합니다. 

잘 하려고 하고  비본질을 절대화 시키려고 하니까 싸우는 것입니다. 

왜 시집 장가를 못가는 줄 압니까?  없는 것을 찾으니까 그렇습니다. 

잘생기고 돈많은 사람은 없습니다. 예쁘고 믿음 좋은 여자는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우리가 다 악질인데

더 큰 악질이 안되어 살아가는 것이 은혜입니다. 

교회는 단순해 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것은 다 있는데 예수님의 임재가 없다면 그것은 껍데기 교회입니다. 

다 없는데 예수님만 드러난다면 좋은 교회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꾸 부각시켜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영접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사람은 예수님 만나야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새사람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고 가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파송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사람이 주인공 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목사도 집사도 다 예수님 뒤로 가야 합니다.

사람은 다 사라져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에게로 가도록 돕고 예수님 만나게 해야 합니다. 

사람을 너무 믿어도 안되고  의탁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상처 받은 이유는 하나님 보다  사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3-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돕고 섬길 대상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받은  상처가 치유됩니다. 

수많은 상처들이 다가와도 넉끈이 이겨낼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부족하고 죄인된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만날수록 마음이 넉넉해지고 따뜻해 집니다. 

우리는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개인의 욕망으로부터 자유함을 더 많이 누리게 됩니다. 

내 자신도 너무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예수님을 더 의지하시므로

제2의 리드(=갈대)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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