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눈물 (요5:1-18)
오늘 이야기는 구원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고 망가졌기에 구원받아야 합니다.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대속함을 믿고 죄사함 받아야 합니다.
진노와 형벌에서 건짐받아야 합니다.
1. 그러기 위해서는 가짜 구원을 걸러내야 합니다.
첫째는 헛된 기대감입니다.
기대감이 틀리면 잘못된 곳으로 가면서도 모릅니다.
목적지를 정확히 체크해 봐야 합니다.
목적지가 다르면 구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예수님의 3번째 기적 사건입니다.
연못 베데스다란 뜻은 자비의 집입니다.
자비의 집에는 자비가 없고 경쟁만 있습니다.
양문 곁에 있는 자비의 집이 있습니다.
성전에 재물로 가져온 양들을 깨끗이 씻는 장소입니다.
행각이 다섯개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풍성하다할때 =5를 씁니다.
애굽 총리된 요셉이 동생 베냐민이 왔을때 형들보다 5배를 줍니다.
우리나라로 8각정 정자가 다섯개가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곳을 사람이 살수있는 풍성한 곳이라고 합니다.
막상 들어가 보니까 거짓이 있고 경쟁이 있고 매정함이 있습니다.
같은 병자들이면서도 마음문을 열지 못하고 위로하지 못합니다.
헛된 기대감만 난무합니다. 한마디로 세상은 미처 돌아갑니다.
예수님은 이곳을 방문하여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진짜도 아닌 것을 붙잡고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헛된 기대감입니다.
우리에게는 진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치료자이십니다.
같은 병자들끼리 위로하고 도와야 하는데 서로 경쟁적입니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서 교제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헛된 기대감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다가 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면
네! 낫기를 원합니다. 네 아니면 아멘 하십시오.
본문의 38년된 병자는 이렇쿵 저렇쿵 변명을 늘어 놓습니다.
속이 병들어 있습니다. 정신이 병들어 있습니다.
예라고 대답을 못합니다.
병든 사람들은 바로 대답을 못하고 궁시렁 궁시렁 변명을 늘어 놓습니다.
너 이쁘구나 하면 감사합니다. 병들면 내가 뭐가 이뻐요,
너 잘하는구나 하면 감사합니다. 하면 되는데 뭘 잘해요
병들면 이것이 안됩니다. 이래도 시비 저래도 시비를 겁니다.
심령이 고침 받아야 됩니다.
우리를 고치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대답이 단순합니다.
5-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심령이 병들면 동문 서답입니다.
심령이 건강한 사람은 일상에서 쓰는 단어는 두가지 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두마디 하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먼저 심령을 치유 받아야 말이 고쳐집니다.
우리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병을 위해서 기도를 안했습니다.
이 병자의 문제는 자신은 안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자포자기 하고 주위 병자들을 원망만 합니다.
예수님께 가면 답이 있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예수님께 가면 자유를 얻습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대속자이십니다. (리딤머)
예수님은 대속해 주셨습니다. 죄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셨습니다.
내가 받아야 할 형벌 고난 멸시 죽음까지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영벌에 처할 죄인입니다.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나음을 입었습니다.
채찍에 맞음으로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사53: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구원은 이것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8-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할때 일어나고 걸어가라 할때 걸어가니 기적을 체험합니다.
구원은 예수님께 기대감을 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기대를 걸어야 합니다.
오늘도 다른 것에 기대를 가지고 계시면 헛된 기대감입니다.
낫고자 하는 기대감은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1. 일어나 2.네 자리를 들고 3. 걸어가라 세가지 프로세스입니다.
유대인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느냐!
유대인들은 따질 것입니다.
법이 중요합니까 사람이 중요합니까?
유대인들은 마음이 병든 사람들입니다. 법이 중요하다고 할것입니다.
이들은 축복할 줄도 모르고, 함께 기뻐할줄도 모릅니다.
성경은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고 하십니다.
3. 심령이 건강한 사람들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수 있습니다.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웁니다.(롬12:15)
이렇게 살려면 자기를 완전히 비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병자가 낳은 것을 보면 함께 기뻐하지 못합니다.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기준에서 벗어난것만 보입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아야 하는데 일하는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기준에 묶여서 비난 비판 정죄하며 살아갑니다.
안식의 의미는 맡기고 쉬면 하나님이 완성시키십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완성시키시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십니다.
10-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예수님은 사람들의 칭찬 인정 원치 않으셨기에 고치시고 가버리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 생각은 항상 옳다고 생각하고 비난 비판 정죄합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나는 항상 옳다고 주장합니다.
아닙니다. 나도 틀릴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 성숙되어 갈수록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한 이유는 자기 이익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는 그 내면에 이익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미워한 이유는
자기의 인기와 이익이 주님께로 가기 때문입어니다.
그래서 트집을 잡아서 공격합니다.
유대인들은 복음에 대해서 적대적입니다.
무나 비유에서 주인이 외국에 가면서 종들
10사람에게 공평하게 한무나를 맡깁니다.
가서 장사를 해서 남기라고 하며 나누어 줍니다.
주인이 장사를 하라고 하면 장사를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무나로 열무나를 남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5배, 6배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무나를 땅에 묻어 놓았다가
주인에게 한무나를 가지고 나옵니다.
주인께 순종하지 않고 자기 뜻과 자기 판단으로 장사를 안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개인의 주관이 너무나 강합니다.
자기가 판단해서 이것은 옳고 이것은 그르다고 판단합니다.
최고의 원수는 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 판단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면 이런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 주어 패버립니다.
바보인데 고집까지 쌥니다. 누가 이런 사람 쓰겠습니까?
내가 죽어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나 다이가 되지 않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자기 판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보입니다.
고집쟁이 입니다.
선과 악을 항상 판별하면서 살아갑니다.
매사에 옳다 그르다하며 살아갑니다.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 바보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다 바보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모릅니다.
주님이 말씀하실때 순종하다 보면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물을 채우라 채웁니다. 갔다 주라 주었더니 기적을 봅니다.
순종하므로 우리 삶 가운데 30배 60배 100배를 체험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될때에 함께 축하하고 기뻐하는 영성,
이웃들이 슬퍼할때 함께 슬퍼하는 영성, 주님 만난 사람들입니다.
나의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박아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 믿지 못하면 심령이 건강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건강한 감성의 소유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은 예수님께 맡기지 못해서입니다.
삶에 안식이 없고 기쁨도 없고 불안하십니까?
예수님께 온전히 맡기지 않아서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고지 곧대로 받아 들이십시오.
말씀에 순종하실때 거듭나는 역사, 심령이 밝아지는 역사,
기쁨과 눈물이 있는 건강한 심령으로 회복되시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설교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Test of Faith (1) | 2024.03.16 |
---|---|
From death to life (0) | 2024.03.09 |
A life without fatigue (1) | 2024.02.24 |
Who drank the water of life (1) | 2024.02.17 |
Come into the light (0) | 2024.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