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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

Jesus who saves

by samoa 2025. 8. 30.

살리시는 주님(요8:1-30)

 

익숙한 말씀입니다. 

본문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이야기입니다. 

본문의 세 부류의 등장 인물을 보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 있습니다. 

고발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군중들이 있습니다

이 고발을 받은 예수님이 계십니다.

여러분은 누구와 동일시 하십니까? 

 

1. 정죄하고 비판하는  입장입니다.  

빛이 없으면 어둡기에 정죄와 비판이 나옵니다. 

고발하는 종교인 군중의 모습이 나의 모습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고발합니다. 

죄지은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비판할 수 있습니다.

선악과의 시각으로 사람을 바라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비판할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너는 왜 그렇게 당당하지 못하냐? 

너는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느냐? 

쾨활하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에게도 비판합니다. 

사람은 뭐든지 정죄하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간음한 이 여인보다 비판한 사람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비판하는 군중 서기관 바리새인들 너희가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면 비판과 정죄를 왜 하겠습니까? 하는 이유는 

컽으로 볼때는 상대를 공격하는 것 같지만 

목적은 자기 이익 때문에 한다는 것입니다. 

내용은 자기 이익 때문에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날고 뛰는사람을 보면 결국 자기 이익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남 공격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면 중독입니다..

사람은 죄인이기에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을 공격하고 비판하는  것으로 자신은 의롭다고 합니다. 

 

인간은 존재론 적으로 불안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몇일동안 안하다. 또 비판합니다. 중독되어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언제 죄에서 자유함과 구원이 있습니까? 

자신이 죄인이라고  보일때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비판 정죄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6-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해서 죽일 건수를 잡을 기회가 된것입니다. 

껀수 함정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심이 썩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2. 간음한 여인의 입장입니다. 

이 여인은 굉장히 외로운 여인일 수 있습니다.

조실부모해서 부모의 사랑을 못받은 여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아저씨의 친절에 마음을 주게 되고 

알고 보니까 아저씨가 유부남입니다.  

아마 바리새인들이 쳐 놓은 음모에 걸려 든 것일수 있습니다. 

간음은 은밀하게 하지 쉽게 현장에서 잡히지 않습니다. 

남자는 재빨리 도망하여 나오지도 않습니다 

율법에 간음을 하면 간부와 간녀 둘다 쳐 죽이라고 합니다. 

이 여자가 함정에 빠진 것 같습니다. 

간음하다 잡히면 돌에 맞아 죽을줄 아니까 얼마나 떨겠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상황을 알고 전체를 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가 왜 끌려 왔는지 아십니다. 

사람은 부분적으로 아는 것을 전체를 아는 것처럼 떠벌립니다. 

전체를 아시는 주님은 이 여인의 억울함도 알고 

바리새인들의 정죄 비판을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를 용서할 수 있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심적 상태를  다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도 실수도 억울함도 다 아십니다. 

정죄하는 사람들과  참소하는 사람들이 소리높여 

율법에 이런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 앞에서 앉아서 땅에 글을 쓰십니다. 

 

8-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그리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있으면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십니다. 

인간인 우리를 속속들이 다 아시는 주님이 정곡을 찌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쓰신 글에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죄를

상세하게 하나하나 적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본 주위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뒷걸음질 칩니다.

왜 날마다 예수님 앞으로 나가야 합니까? 

예수님 앞으로 나가면 나의 죄가 보입니다. 

죄가 보이면 사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급하게 결정하지 마시기 바랍나다. 

먼저 기도히시기 바랍니다. 서기관들이 다그칩니다. 

기도하면 말씀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영적 권위가 생깁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 (액슈시아=본질)있는 자와 같았습니다. 

말에 힘이 있고 가볍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기도하고 가면 말에 권세가 있습니다. 

특히 목회자들은 영적인 권세(영권)가 있어야 합니다. 

 

3. 권세있는 예수님 입장입니다. 

사람은 죄인이기에 심판자의 자리에 있으면 안됩니다. 

이 사건은 종교인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 위한 함정입니다. 

누구나 예수님께 나가면 죄인된 나의 모습이 보입니다. 

간음한 여인도 정죄하는 종교인들도 군중들도 자신의 죄가 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가까이 가야 죄가 보입니다. 

예수님이 여자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어디갔느냐?

10-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사랑은 죄인된 사람에게 할 말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너를 정죄하던 자가 없느냐?  주여 없나이다. 

교회가 어떤 죄인이 오더라도 할말을 하게 해야 합니다. 

입을 막으면 안되고 말을 하게 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한 베드로와 대화를 합니다. 

사람이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회복되어 가는 싸인입니다. 

 

사람들이 기도해 주세요. 부탁할때 

왜 그랬는지 묻지 마시고 그냥 기도해 주세요. 

왜 그랬는지 자꾸 묻지 마세요. 

궁금하다고 다 묻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이 여자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여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삶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어 살아 갔을 것입니다.

우리도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나온 여자보다 

나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의 옷자락으로 가리워졌을 뿐입니다.  

사람은 정죄해서 변하는 것보다  용서받으면 변화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아 한평생 죄에 묶여  사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사명자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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