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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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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oa 2025. 7. 19.

 

구원 받은 사람 (요한복음 5 : 1 - 29)

 

본문은 구원 이야기입니다.

구원받아야 합니다. 천국 백성 되어야 합니다.

죄사함 받아야 합니다. 형벌에서 건짐 받아야 합니다. 

죄책감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기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가짜 구원을 걸러내야 합니다. 

가짜 회개를 걸러내어야 합니다. 

헛된 기대감을 걸러내야 합니다. 

목적지가 다르면 함께 기뻐할 수 없습니다. 

목적지를 체크하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세번째 기적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십니다.

이분이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베데스다란 이름의 뜻은 자비의 집입니다. 

자비의 집에 자비가 없습니다.

오히려 경쟁과 잔인함이 있습니다.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이 있습니다. 

행각이 다섯개가 있었습니다. 

 

1. 구원받은 사람은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기쁨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안색은 속일수도 없고 감출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기뻐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힘들고 고달픈 인생길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이 언제 동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제일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낳는다고 합니다. 

제일먼저 들어가려면 발이 아프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경쟁적이고 잔인하고 모순적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빨리 가야합니다.

옆사람들은 잠재적인 경쟁자들입니다.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늘 긴장하고 경쟁적입니다. 적대적입니다. 

복음은 네트웍킹하는 것입니다.

서로 협력하고 윈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미쳐 돌아갑니다. 세상은 경쟁적입니다. 

세상은 친구따라 강남갑니다. 

러쉬 러쉬 옆사람 보고 행동합니다.

사람들이 몰려가면 나도 갑니다. 

19세기때 미국에서 골드러쉬때 서쪽으로 서쪽으로 몰려 갔습니다. 

골드러쉬때 돈번 사람은 청바지 장사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세상은 헛된 기대감으로 살아갑니다.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우리에게는 헛된 기대감이 아니라 진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진짜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이 표댓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한사람에게 주목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때문에 마음도 병들어서 네를 못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여러분에게 낫고자 하느냐 하면 네! 하십시오. 

 

오늘 38년 병자는 대답을 못하고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서  

이러쿵 저러쿵 휭설수설 합니다. 

몸만 병든 것이 아니라 마음도 병이 들어서 예를 못합니다. 

너 예쁘다 하면 내가 뭘 예뻐요. 못생겼다 하면 내가 왜 못생겼어요.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긍정을 못합니다.

마음이 병들어서 그렇습니다. 

너 잘한다 너 예쁘구나 하면 감사합니다. 하면 되는데 

 

마음이 병이 들면 이래도 아니고 저래도 아닙니다. 

치유 받아야 합니다.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몰라요. 

몸이 아픈데도 병낳는 것을 위해서 기도도 안했다는 것입니다. 

희망을 다 버리신 분들 예수님이 희방입니다. 

 

5-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우리가 매일 해야하는 말은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

마음이 치유 받으면 말이 달라집니다. 

마음이 병들면 하나님 앞에서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38년 병자는 병울 위해서 기도 안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희망입니다. 예수님이 대속자 이십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죄값을 대신 치러 주시고 

내가 채찍 맞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대신 맞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죄인이라 희망이 없습니다.

지옥가서 영벌을 받을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대신 뒤집어 쓰셨습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질병을 짊어지시고 가셨습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도 주님이 말씀하시는 죽을 병도 낳았습니다. 

 

오늘 주님이 38년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 하니까 일어나 걸어갑니다. 

헛된 기대감이 아니라. 예수님 바라보는 것이 베데스다인 것입니다. 

이 날은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쉬는날입니다. 맡기는 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완성시키십니다. 

38년 동안 사용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 나가려면 다 버리고 나가야 합니다.

제자들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8-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세마디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날 자리를 들고 걸어가면 일이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마음이 병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축하할줄도 모르고 기뻐할 줄도 모릅니다.

축복할 줄을 모릅니다.  

우리도 예배 드리고 축복하고 예배 드리고 축하해야 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우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면 배가 아픈것이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슬퍼하면 마음에서 고소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낳았다면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10살에 병들었으면 지금 48세이고 20살에 병들었으면 58세이고

왜 안식일이 생각이 나는 것입니까?  병들어서 그렇습니다. 

이유는 선악과로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 기준에 벗어나지 못해서입니다. 

옳다 그르다. 선이다 악이다 이런 관점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병 낳은 것에 대하여 기뻐하지 못합니다. 

 

비난이 많고 비판하고 정죄가 많으면 옳은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혹시 있다면 병든 신앙입니다. 

시비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이득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들이 누려야 할 인기가 예수님에게 다 가는 것이 배가 아팠습니다.  

 

2.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과 하나됩니다.  

14-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예수님께 은혜 받은 사람은 예수님이 구주이신 것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을 증거하지 못한다면 받은 은혜를 모르든지 확신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힘과 생명은 하나됨에서 나옵니다. 

일치와 투명성에서 힘이 나옵니다. 

마음만 맞으면 아무리 많이 모여도 질서가 나옵니다. 

하나님과 일치만 된다면 어마어마한 능력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하나님됨을 힘써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일치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됨은 예배에서 기도에서 선교에서 전도에서 나옵니다. 

하나님과 일치만 된다면 하나님이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입만 여시면 하나님과 내가 하나다. 

 

1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19-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유대인들의 시비는 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느냐 였습니다. 

38년 동안 병으로 고통에서 해방된 것에 대한 관심은 없습니다.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나님과 내가 하나다. 동격이라고 하나까

그러면 이것은 신성모독이다. 그럽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하나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되지 못하는 것입니까?

내 고집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내 자아가 죽어야 예수님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투명하지 못해서입니다. 

숨기는 것이 있으면 하나되기 어렵습니다. 

 

3. 구원받은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이 없습니다.

20-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의 뜻을 아들에게 다 보이십니다. 감추는 것이 없습니다. 

보이시고 보이사 반복합니다. 서로 마음을 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일 미워하는 것은 속과 겉이 다른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외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생각과  말하고 다른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우리 안이 투명해야 합니다. 

외식이 사라져야 일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진실되게 드리면 마음이 깨끗해 집니다.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많은 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은 자녀들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한다고 합니다. 

 

모든 능력은 일치됨에서 나옵니다. 

성찬식도 예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탕자가 왜 문제였습니까?  아버지를 떠나 간 것입니다. 

돌아왔을때 다시 일치가 될때에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로 예수님과 일치되도록 돕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되게 하는 영입니다. 악한 영은 분열시킵니다. 

내가 먼저 예수님과 일치되고 나를 보고 또 다른 사람과 일치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예수님과 일치되는 것입니다. 

 

21-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 되시므로 심판주가 되셨습니다. 

인간이 범죄할때 홍수심판, 바벨탑 심판, 언어의 심판, 장자의 심판, 

종말이 오면 백보좌 심판을 하셔서 지옥과 천국으로 가게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자와 구원해 주시는 구속자가 되셨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 심판하실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심판에서 자유롭습니다. 

공중재림 하셔서 백보좌 심판때 예수님이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십니다. 

예수님에게 오면 겸손함이 오고 눈물이 생겨서 겸손해 집니다. 

죽음의 상황속에서도 겸손함과 눈물이 있으면 다시 살려주십니다. 

악한 왕들 므낫세, 아합도 눈물로 겸손으로 부르짖으니 살려 주십니다. 

부요하기 원하십니까? 겸손해 지십시오. 조만간에 증조가 나타납니다. 

죽음 이후에 심판이 무섭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받지 않습니다. 

 

25-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받으면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얼굴이 밝아집니다.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뀝니다. 

마지막 백보좌 심판이 두렵지 않습니다. 담대해집니다.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면 다 살아납니다. 

나도 살고 내 가족도 살고

내가 발 딛고 사는 그 땅이 구원받습니다.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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