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살리는 사람(요1:35 - 51)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살리려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으로 네 명의 제자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많은 순간에 조건과 환경이 좋으면 잘될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이 되는 것은 사람이 있어야 일이 되어집니다.
교회란 단어도 에클레시아인데 뜻은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믿음의 사람이 세워져야 건강한 교회입니다.
교회도 나라도 어떤 단체도 신실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지혜로운 일꾼이 있어야 합니다.
미군이 전세계 경찰 국가 역할을 했습니다.
베트남도 구하려다 패배하고 나왔습니다.
미국이 20년 동안 파키스탄도 구하려다
돈을 천조를 부었는데 빈손들고 나왔습니다.
탈레반 들이 정부군에게 너희들 총버리지 않으면 죽인다.
이메일 보냈는데 그것 받고 정말 정부군에서 다 도망쳤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프칸 정부군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건 사람이 없습니다.
진정한 애국자들이 없었습니다.
미국이 물자 대주면 다 빼먹고 제대로 쓰지 않았습니다.
1. 예수님이 사람을 살려냅니다.
성경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침례요한은 예수님 오시는 길을 예배한 사람입니다.
침례요한의 제자가 둘이 있는데 안드레와 요한 이었습니다.
침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리칩니다.
침례 요한의 두제자가 이 소리를 듣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35-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여기서 침례요한의 인품이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침례요한은 사람들이 당신이 그리스도입니까? 내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자기를 부인합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만큼 약한 존재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양몰이 개들입니다. 내가 아닙니다.
자기가 중요한 사람은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여자들은 약한데 엄마가 왜 힘이 있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아기를 키울때 다 쏟아 붓습니다.
엄마가 강한 이유는 자기가 없습니다. 자기를 다 쏟아 붓습니다.
자신보다 중요한 사람이 있는 사람은 멘탈이 강합니다.
십자가 지는 사람들은 남을 죽이거나 자살하는 일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감옥에 가도 잠을 잘 잡니다.
이유는 자기보다 더 중요한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집중하는 사람치고 강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두려움에 잡혀서 조그만 변화에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자기를 부정하지 못하면 불안하고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기주의 자들이 정신병에 불안증에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데 자기를 지킬 능력이 자신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침례요한은 담대한 사람입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이 자신을 주목하지 못하게 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침례 요한은 자기 제자들이라도 예수님을 보게 합니다.
자기를 두고 예수님께로 가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제자들이 자기를 버리고 가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2. 살리는 사람은 사람에게 집중합니다.
어느 시대나 어느국가든지 사람을 키우는 국가가 일어납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을 키우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침례요한의 제자들이 다가 왔을때
예수님이 무엇을 구하느냐 묻습니다. 사람의 필요를 보십니다.
38-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어디에 계십니까? 와서 보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말로 듣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는것이 100배 학습효과가 좋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게 됩니다.
부모들과 함께 사는 자녀들은 부모가 가치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대부분의 사상은 어릴때 부모로부터 배운다고 합니다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 사는 거처를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보이면 영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안드레가 제일먼저 자기 형 베드로에게 전합니다.
사람은 맛있거나 좋으면 소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것입니다.
이 길만이 생명을 얻는 길인데 이것을 침묵할 수 있습니까?
41-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베드로가 드러나게 된 것은 동생 안드레 때문입니다.
안드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형 베드로 뒤로 물러납니다.
안드레는 시기심도 없고 말없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집니다.
이런 사람은 편안한 사람입니다. 마냥 같이 있어도 피곤치 않는 사람입니다.
쉼을 주는 인생 평안함을 주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럴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은 없다고 해야 합니다.
빌립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먼저 빌립을 찾아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빌립을 불렀습니다..
빌립은 부르자 마자 곧장 따라 나옵니다.
빌립이 형 베드로와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전합니다.
나다나엘은 같은 벳세다 사람들입니다.
복음은 전염시키는 것입니다.
전염이 안된다면 가짜일 수 있습니다.
전염이 안되는 것은 예수 바이러스가 내속에 안들어온 것입니다.
내가 전염 되었다면 전염을 일으키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본인이 결정할 일입니다.
2001년에 나온 책인데 찰스 콜슨이 쓴 책중에 "러빙 갓" 있습니다.
50년대 러시아 스탈린에 의해서 시베리아 감옥에 갖혀 있던
외과 의사 코른벨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감옥에서 죄수중 한 사람이
"나의 죄를 용서하신 것 같이 나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이것만 외우면서 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소리를 듣고
코른벨트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간수중에 악질 간수가 있는데 죄수와 싸우다가 동맥이 끊어 졌습니다.
이 외과 의사가 봉합수술을 했는데 미워서
몇칠 있다가 터지도록 수술을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그런 모습이 양심에 아픔을 주어서
다시 회개하고 바로 수술을 하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우리 대부분 믿는 이웃들을 보면서 믿게 됩니다.
코론벨트가 간수들의 폭행으로 죽습니다.
그런데 코론밸트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게 된 솔제니친이 감옥을 나와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는 침례요한으로 시작해서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 다 영향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은 약한자를 불러서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심을 믿으십니까? 가서 증거하십시오.
3. 살리는 사람은 가능성을 봅니다.
47-.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베드로에게 너 시몬이 아니라 게바라 하리라. 게바=반석
예수님은 베드로의 현제의 모습을 보지 않고
베드로가 장차 위대한 일꾼이 되는 것을 보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때에 나이가 너무 많은 분은 없습니다.
돈이 없다고 못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보시고 가능성을 보십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
예수님은 그런 말을 듣고도 간사함이 없다고 하십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해 주십니다.
그리고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것도 보았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속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신 일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살아나면 또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침례요한에서 안드레가 나왔고 안드레 아래서 베드로가 나왔습니다.
어느 가정에 갔는데 화목하면 그 가족중에 누군가 희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증인입니다. 안드레 빌립 나다나엘로 전염되어 갑니다.
우리모두 영혼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으시기 축복합니다.
베드로는 반석이 되고요. 나다니엘은 전도자가 됩니다.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다면 전염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사람을 살려냅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으시기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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