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나서 묵상 새벽기도
요나서 1장 요약
1장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외치라고 명령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하려 합니다. 그는 욥바에서 배를 타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큰 바다 폭풍을 일으키셨고, 배에 탄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집니다. 선원들은 각자의 신에게 부르짖으며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제비를 뽑았고, 결국 요나가 원인임이 드러났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 중이라고 고백하며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선원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려 했지만, 폭풍이 점점 심해지자 결국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바다는 곧 잔잔해졌고, 선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고,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삼 일 삼 야를 있게 됩니다.
설교 제목: “하나님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요나서 1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나서 1장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불순종,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묵상하려 합니다.
요나서는 단순히 “큰 물고기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사귐)에 대한 깊은 영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
니느웨는 당시 악한 도시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원수 같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나를 그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은 심판만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회개와 구원을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도의 자리로 어떤 사람에게는 용서의 자리로
어떤 사람에게는 섬김의 자리로 어떤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자리로 부르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내 생각이 앞설 때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감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왜 하필 니느웨입니까?” “저 사람들은 망해야 하지 않습니까?” 자기 생각입니다.
그 마음이 결국 불순종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순종은 이해한 후에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2. 불순종은 도망으로 나타납니다
요나는 니느웨 대신 다시스로 갔습니다. 성경은 매우 의미 있게 기록합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여호와 앞을 떠나려고”
하지만 여러분,
사람은 하나님을 떠날 수 있어도 하나님은 사람을 놓지 않으십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말했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피하려 합니다.
- 예배를 멀리하기도 하고, 말씀을 피하기도 하고, 기도를 미루기도 합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3.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서도 일하십니다
요나가 탄 배에 큰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이 폭풍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폭풍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폭풍이 찾아옵니다.
물질의 문제, 건강의 문제, 부부의 문제, 가정의 문제, 관계의 아픔이 찾아옵니다.
물론 모든 고난이 죄 때문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우시기 위한 영적 신호일 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폭풍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요나를 죽이려 하신 것이 아니라 돌이키게 하시려 했다는 것입니다.
징계의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히브리서는 말씀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4. 이방 선원들이 더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참 이상한 장면이 나옵니다. 선지자인 요나는 배 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이방 선원들은 두려워 떨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둔감해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영적으로 잠들 수 있습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마음은 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우리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선장은 요나에게 말합니다. “일어나 네 하나님께 구하라.”
이 말은 마치 하나님께서 요나를 깨우시는 음성과 같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지 말고 깨어 있으라.”
5. 은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물고기를 심판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구원의 도구였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살리기 위해 물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도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환경을 통해 우리를 살리십니다.
닫힌 문이 은혜일 수 있고, 멈춰진 일이 보호하심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사람도 다시 사용하십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끝난 인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이야기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서 1장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는가?”
혹시 하나님을 피해 도망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도망가는 요나를 끝까지 찾아오셨습니다.
그 사랑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 불순종 가운데 있어도, 연약함 가운데 있어도, 실패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요나서 2장 요약;
2장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의 기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깊은 바다 속에서 죽음과 같은 절망을 경험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요나는 물결과 파도 속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눈앞에서 쫓겨난 것 같았지만, 다시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믿음으로 선언합니다. 그는 깊음과 바다풀이 자신을 둘렀고 생명이 끊어질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건져 올리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요나는 우상 숭배하는 자들의 헛됨을 말하며 자신은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라고 선포합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물고기에게 명령하시자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 냅니다.
설교 : “깊은 곳에서도 들으시는 하나님”(요나서 2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나서 2장을 통해 절망 가운데서도 들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려 합니다.
요나서 1장은 불순종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2장은 회개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피해 도망가던 요나가 이제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인생은 때때로 깊은 바다와 같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숨이 막히고,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깊은 곳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1. 하나님은 깊은 곳에서도 기도를 들으십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가장 절망적인 장소입니다.
빛도 없고, 희망도 없고, 살아날 가능성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곳이 기도의 장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말합니다.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요나는 비로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는 평안할 때는 기도를 쉽게 잊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만듭니다. 병상에서 드리는 기도, 눈물 속의 기도,
아무도 모르는 새벽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는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형편이 좋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깊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비록 눈물의 기도일지라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2.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합니다
요나는 자신이 왜 이런 상황에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그 불순종의 결과로 폭풍을 만났고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나를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물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이것은 심판인 동시에 은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때때로 고난을 통해 우리를 돌이키십니다.
우리는 편할 때는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밑바닥에 내려갈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것도 돼지우리에서였습니다.
고난은 아프지만, 영혼을 깨우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까?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무너짐 속에서도 일하십니다.
3. 요나는 다시 성전을 바라보았습니다
요나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이 말은 단순한 건물의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겠다는 믿음의 선언입니다.
한때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이 이제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방향입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실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주님께 돌아왔고,
주님은 그를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4.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요나서 2장의 핵심 구절입니다.
요나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난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경험 때문도 아니고, 지혜 때문도 아니고, 능력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건지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주님 아니면 나는 살 수 없습니다.” 이 고백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5.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은 물고기에게 명령하셨고, 요나는 육지에 나오게 됩니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요나는 실패했습니다.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세상 사람은 실패한 사람을 정죄하지만,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다시 세우십니다.
베드로도, 다윗도, 마가도 다시 사용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서 2장은 절망 가운데 드린 기도의 이야기입니다.
깊은 바다 속에서도 하나님은 요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오늘 우리 삶에도 깊은 밤 같은 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깊은 곳에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의 사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요나 3장 요약;
3장은 하나님께서 다시 요나를 부르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번에는 요나가 순종하여 니느웨에 들어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라고 외칩니다.
놀랍게도 니느웨 사람들은 왕으로부터 백성까지 모두 회개합니다. 왕은 보좌에서 내려와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금식을 선포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까지 금식하게 하며, 악한 길과 포악한 행위를 떠나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진실한 회개를 보시고 뜻을 돌이키사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요나서 3장은 “심판보다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과 “돌이키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설교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살리신다”(요나서 3장)
사람은 누구나 실수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떠나기도 하고, 자기 길로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넘어졌던 사람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한 번 도망쳤던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절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니느웨 역시 죄악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성을 그냥 멸망시키기보다 먼저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오늘 요나서 3장을 통해 우리는 “회개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나서 3장 1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 말씀은 참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요나는 실패했습니다. 도망쳤습니다. 불순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났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도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멈출 때도 있습니다. 믿음이 식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부르십니다.
“다시 시작하자.” “다시 내게 돌아오라.” “다시 말씀 따라 걸어가라.”
베드로도 실패했지만 다시 부름 받았습니다. 다윗도 넘어졌지만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을 다시 붙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낙심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2. 순종은 도시를 변화시킵니다
요나는 이제 니느웨로 갑니다. 니느웨는 당시 매우 큰 도시였습니다. 죄악과 폭력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변화될 가능성이 없는 곳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요나는 길게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짧은 한마디였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 앞에 도시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왕이 움직였습니다. 백성이 움직였습니다. 짐승들도 회개합니다. 도시 전체가 회개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배웁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보다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요나는 완전한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마음속에 불만도 있었고 편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전했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부족해서 안 됩니다.” “나는 말을 잘 못합니다.” “나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작은 순종 하나가 가정을 바꾸고, 교회를 바꾸고, 한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3. 진정한 회개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금식했습니다.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악한 길에서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8절 말씀은 중요합니다.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진짜 회개는 눈물만이 아닙니다.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계속 같은 길을 간다면 그것은 온전한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입니다.
미워하던 마음을 버리는 것, 거짓된 행동을 멈추는 것, 교만을 내려놓는 것,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함을 요구하시기보다 돌이키는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너는 정말 내게 돌아오고 있느냐?”
4. 하나님은 긍휼을 기뻐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이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 자체가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탕자의 비유에서도 아버지는 집 나간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역시 하나님의 긍휼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도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결론
요나서 3장은 두 종류의 회복을 보여줍니다.
첫째는 요나의 회복입니다. 불순종했던 선지자가 다시 쓰임 받았습니다.
둘째는 니느웨의 회복입니다. 죄악의 도시가 회개를 통해 살아났습니다.
이 모든 중심에는 하나님의 긍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내게 돌아오라.” “다시 시작하라.” “회개하는 자를 내가 살리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 아직도 돌이켜야 할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내려놓읍시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정죄하기보다 품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하나님께 돌아오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요나서 4장 요약;
요나서 4장은 니느웨가 회개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거두어진 후,
요나가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크게 화를 내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신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처음부터 니느웨에 가기 싫어했던 것입니다(욘 4:2).
요나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하며 성 밖으로 나가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어떻게 하실지 지켜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을 자라게 하여 요나에게 그늘을 제공하셨고, 요나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하나님께서 벌레를 보내 박넝쿨을 시들게 하셨고 뜨거운 동풍까지 불게 하시자 요나는 다시 죽기를 구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옳으냐?"
그리고 하나님은 요나가 수고하지도 않은 박넝쿨 하나를 아까워하면서도, 십이만 명 이상의 생명이 있는 니느웨 성에 대해서는 긍휼을 품지 않는 모습을 지적하십니다.
요나서 4장은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좁은 마음을 대조하며 끝이 납니다.
설교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라"(요나서 4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서는 물고기 이야기로 유명하지만, 사실 요나서의 중심은 물고기가 아닙니다.
요나서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다루시고, 한 도시를 살리시고,
마지막에는 선지자의 마음까지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이야기입니다.
4장은 매우 놀라운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했습니다.
심판이 철회되었습니다.
수많은 생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원래라면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선지자 요나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화가 났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의 구원을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요나서 4장 1절은 말합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하나님은 기뻐하시는데 요나는 화를 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셨는데 요나는 불만을 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원수였습니다.
요나는 원수가 망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문제는 니느웨가 아니라 요나의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 기뻐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왜 저 사람이 복을 받지?"
"왜 저 사람은 용서받지?"
"왜 하나님은 저 사람에게 기회를 주시지?"
그때 우리는 요나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은혜는 자격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 다른 사람에게 베푸시는 은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환경보다 우리의 마음을 더 다루십니다.
하나님은 박넝쿨을 준비하셨습니다.
요나는 그 그늘 아래서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벌레를 준비하셨습니다.
박넝쿨은 시들었습니다.
또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습니다.
요나는 다시 낙심했습니다.
본문에는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준비하사"
하나님은 물고기도 준비하셨고,
박넝쿨도 준비하셨고,
벌레도 준비하셨고,
동풍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주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박넝쿨을 주신 목적은 단순히 더위를 피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나의 마음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러 환경을 사용하십니다.
때로는 성공을 주시고,
때로는 실패를 허락하시고,
때로는 풍성함을 주시고,
때로는 부족함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성품을 빚어가십니다.
환경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긍휼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요나서 4장 10-11절입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한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큰 성읍 니느웨를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의 관심은 박넝쿨이 아닙니다.
영혼입니다.
니느웨에는 십이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보다 구원을 원하셨습니다.
멸망보다 회개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영혼을 찾고 계십니다.
교회의 사명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당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있는 곳에 우리의 관심도 있어야 합니다.
맺음말
요나서 4장은 결론이 없는 책처럼 끝납니다.
요나가 회개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질문을 남겨두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 마음을 이해하느냐?"
"너는 내가 사랑하는 영혼들을 사랑하느냐?"
"너는 은혜받은 자답게 살고 있느냐?"
요나는 박넝쿨을 아꼈지만 하나님은 영혼을 아끼셨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감정을 붙들었지만 하나님은 생명을 붙드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마음,
죄인을 기다리시는 마음,
잃어버린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
그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아파하시는 것을 함께 아파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