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목적 (딤전1:1-20)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람은 육신의 자식이 있지만
영적인 자식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낳은 아들입니다.
내가 은혜를 받아 구원받았으면 믿음의 아들이 있는가?
다른 사람도 은혜받아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내가 훌륭해 졌으면 다른 사람도 훌륭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통해 주님을 알아 은혜받은 제자입니다.
디모데는 혼혈입니다. 아버지는 헬라인이고 어머니는 유대인입니다.
1차 선교여행때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받으라 제자 삼으라.
인생은 빠르게 지나갑니다.
화장지 풀리듯이 빨리 지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내 생각 버리고 하나님이 부르신 일만 하라.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80이다. 신속히 가니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시사.
날을 세어서 낭비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 저것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부르신 것에 집중하라.
요셉이 고난이 많았지만 30살에 애굽총리가 되어
하나님이 맡겨준 일을 성실하게 감당했습니다.
1. 부르심과 보내심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1.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너는 믿음의 아들이다. 너도 보냄 받은 사도이다.
에베소 교회에는 다른 교훈과 바른 교훈이 있습니다.
위조지폐를 감별시키는데 진짜만 연구한다고 합니다.
진짜를 알면 가짜는 저절로 알게 됩니다.
진리도 가짜가 많습니다.
그래서 바른 교훈을 아는데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함께 하시면 주시는 세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5-이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첫째는 청결한 마음,. 둘째는 선한 양심, 세째 거짓이 없는 마음
청결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은 내면에 촛점을 두라는 것입니다.
사역을 할때 내면에 촛점을 마추어서 사역을 하라는 것입니다.
청결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겉은 번지르하는데 마음이 흉악하고 응큼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것이다.
마5:8-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수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세상이 보이고 향락이 보이고
쾌락이 보이고 돈이 보이고 출세가 보이고 일확천금이 보이고
마음이 청결해야 하나님께 쓰임을 받습니다.
쓰임 받으려면 유능함이 아니라 깨끗한 것이 먼저입니다.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긴 들어도 듣지 못하고
애 그렇습니까? 마음이 더러워서 그런 것입니다.
항상 겉이 아니라 청결한 마음에 초점을 가지고 사역하라.
딤후 2:20에 보면 어느 집에 여러가지 그릇이 있는데
비싼그릇 큰그릇 작은 그릇이 있지만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질그릇이라 할지라도 깨끗이 씻어 놓으면 음식을 담는데 쓰임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깨끗함은 내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잡혀야 예수님의 보혈로 내가 깨끗해 질수 있습니다.
범죄한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음이 깨끗함은 내 힘으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우술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소
정직한 영을 창조해 주십시오. 고백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십자가 보혈이 없고 은혜가 없으면 윤리 도덕만 이야기 하면
자기 의만 붙들고 사람들의 칭찬에만 귀기울이고
청결한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자꾸만 사람만 보이고 세상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때마다 청결한 마음주옵소서. 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불들면 우리 마음이 정결해 져서 하나님께 쓰임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옛사람은 십자가 아래 다 묻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밖에 없습니다.
두번째는 선한 양심입니다.
양심은 교회안에서 잘 쓰는 용어가 아닙니다.
양심은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 사람이나 다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 되었지만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이 바로 양심에 남겨져 있습니다.
양심은 게기판입니다. 고장날 수 있습니다. 속도계도 고장 나듯이 양심이 무디어 집니다.
돼지고기 먹으면서 죄책감이 드는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 아버지 세대에서는 개고를 많이 먹었습니다.
양심에도 선한 양심, 더러운 양심, 화인맞은 양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하신 말씀은 성령 받으라. 제자 삼으라는 것입니다.
성령 받으라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자 삼으라에 더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교회는 성령을 강조하지 않는 교회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선하다는 말을 대신하는 단어가 영광이란 단어 입니다.
출33:19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내가 나의 모든 선한 것을 보여주시겠다고 하고 보여주십니다.
선함을 이해가 안되면 영광을 이해하시면 됩니다.
선함이란 토브인데 선함은 영광이 임해야 선함이 이해가 됩니다.
영광과 선함이 교차적으로 나타납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에게서 선함이 나타납니다.
형님들도 훌륭하게 만듭니다.
한마디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합니다.
선하다는 것은 끝이 좋다는 것입니다.
악과 싸워서 승리하고 감옥에서도 평강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면 선한 것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세번째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믿음이 중요하기에 마귀가 이 믿음을 무너뜨리는데 거짓을 뿌립니다.
마귀가 침투해서 우리의 믿음이 가짜로 만듭니다.
신앙생활을 척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비슷하지만 위조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척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믿음 있는 척합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믿음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믿는 척하고 외식하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에는 거짓이 들어가면 나는 착하다고 착각합니다.
거짓이 들어가면 자신이 거짓되다는 것을 모릅니다.
믿음에 거짓이 들어가면 그 교회는 꾸미는 가짜 교회인 것입니다.
메타 버스시대가 오면 다 거짓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생각으로는 착한 것만 생각하고 좋은 것만 지지 하면
자신이 착하다고 착각합니다.
믿음에 거짓이 들어가면 사랑이 없고 자꾸 자기를 속입니다.
믿음은 생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때 죄인으로 와라. 병자로 와라.
죄인이 죄인이라고 그래야지 구원해 주십니다.
믿음에 거짓이 들어가면 연기하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것이 신화입니다.
끝없는 족보싸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태인들와서 족보이야기 하고 신화 이야기 하고
그런 사람들 논쟁에 말려 들지말라.
믿음은 예수 밖에 없다.
4-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6-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율법에 대해서 논쟁하는 사람들 보면
자신들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소리만 큽니다.
복음이란 덧 붙일 것이 없습니다. 믿음의 이야기만 해라.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목회의 지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보내신 일 부르신 일만 해라 목표가 명확해야 합니다.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이 목표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복음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5-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복음이 무엇자입니까?
죄인을 구하시려고 예수님이 이땅에 임하셨습니다.
복음을 만나면 우리도 바울처럼 이렇게 고백합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내힘으로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내 노력이 아니라
구원자 되신 예수 이름을 부르면 됩니다.
삭개오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오른편 강도도 주님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일꾼으로 쓰십니까?
자신 만만한 사람은 리더가 될수 없습니다.
자기의 무능함을 깨닫은 사람입니다.
자기를 부인할때가 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둘째 직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이 있습니다.
미니스트리=직분, 사도라는 직분은 일하는 바운더리입니다.
직분자들은 한결같이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비방자요 핍박자였습니다.
마귀는 속삭입니다. 당신은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를 충성되이 여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긍휼(좋게)이 여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예쁘게 보아 주셨습니다.
16-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그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자녀 삼아 주신것이 최고의 긍휼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백성 삼아 주셨습니다.
나를 직분자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말씀에 붙잡혀 살아야 합니다.
다른 교훈 세상법칙으로 살아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죄입니다 .하면 되는데 자꾸 변명합니다.
핑계되고 결국 믿음이 없습니다.
교훈의 최종 목표는
영생얻은 자에게 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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