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에서 벗어나기(롬2:17-29)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뜻은 내 행위로가 아니라 은혜로
하나님에 의해서 구원받았다는 뜻입니다.
은혜란 하나님의 사랑과 삼위일체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모든 가치와 구원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이것을 믿고 이것을 영접하면 구원받습니다.
그래서 은혜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쳐다보지 않고 인간이 한것만 보면
구원의 대상이 다릅니다. 일차오류입니다.
내 공로를 자꾸 주장하면 은혜의 대상이 다르니까 이차오류입니다.
바리새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지 않고 내 가치만 강조하면 구원은 꽝입니다.
삼차 오류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 유대인들은 구원이 없습니다.
사명자 되고 예배자 되면 바리새인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1. 바리새인이 되지 않는 길,
사명자 되는 것입니다. 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이 다른 것입니다.
종교생활이란 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나 중심으로 하는 생활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불교식으로 공양드리고 천배하고
자기 공로를 드러내고 나를 드러내는 것은 종교인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생활입니다.
믿을때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생활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내가 의롭게 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종교생활은 나 중심으로 하는 생활은 자기 자랑이 나옵니다.
우리는 4대째 믿었고 새벽기도 했고 선교했고 구제했다.
종교생활은 내가 했다가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한것만 늘어놓습니다. 내가 한 이야기만 나옵니다.
은혜 이야기는 안 나옵니다.
한마디로 바리새인들은 은혜의 세계를 모르는 것입니다.
나는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이 은혜로 주셔서 구원받았다
은혜로 받았기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내속에 법보다 은혜가 더 많아졌습니다. 용서 긍휼 너그러움 등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사명감이 있어서
우리만 이렇게 행복하게 의롭게 복되게 사는 것은
이것은 악한 것이다. 우리만 잘 살면 악한 것이다.
이 사실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 사명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포위당했을때 문둥이 4명이 아람진영에 갔다가
먹을것 실컷 먹고 챙길것 다 챙기고 나서
양심에 가책이 와서 다시가서 먹을것 있다고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은 내가 먼저 하나님을 알게 된것을
특권의식으로 여겼습니다. 받은바 축복을 자랑만 했습니다.
선민사상에 머물러 있습니다.
한국 교회도 유태인들을 그렇게 욕하더니
지금 한국 교회들이 똑같이 바리새인들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중세때 선교가 없었습니다.
이웃에게 하나님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세시대를 암흑기 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의 선민의식과 자랑을 깰수 있는 것은
나중심에서 고임에서 흐르는 것입니다.
먼저 믿은 우리가 사명자로 사는 것입니다.
은혜를 알고 사명자로 살아갈때 모두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눅18장에 바리새인과 세리가 동시에 성전에 와서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기도합니다.
나는 저 새리와 같지 않습니다. 남의 것 토색 불의 간음하지 않았습니다.
이레에 두번씩 금식했습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없습니다.
십자가도 없고 성령의 도움심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은혜를 모릅니다.
오직 자기 자신의 자랑만 있습니다.
이러면 바리새인이 되는 것입니다.
세리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누구와 비교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립니다.
많은 분들이 너희는 소금이다 하니까
소금 되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십자가 은혜를 아는 순간
우리는 소금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들어가서 녹아서 세상의 부패를 막아야 합니다.
삭막한 세상에서 맛을 내고 사는 것입니다.
크리스찬이 자신을 드러내려고 한다면 바리새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소금의 사명은 녹아야 하고 죽어야 하고 안보이는 것입니다.
국에 들어가고 배추에 들어가서 녹아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바리새인이 되지 않은 길은 사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못한 것입니다. 소금 탑만 쌓았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너희는 썩었어 하면서 정죄햇습니다.
교회가 죽어라 선교하면 썩지 않습니다.
교회는 선교 안하면 썩습니다. 전도 안하면 고인물이 되어 썩습니다.
자기 혼자 자족하고 이웃을 돌아보지 않으면 섞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인이 되지 않으려면 사명자로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기를 잉태했는데 그 아이를 낳을 힘이 없다고 합니다.
땅에 구원을 배풀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제사장 나라로 만든것은
이웃 나라 영혼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방 나라에 있는 영혼들을 출산해야 하는데 방구만 뀌었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항상 자기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나는 선해 착해 나쁜일 안했어 누구 도왔어 자기 공로 드러냅니다.
나는 의인이고 너희는 다 죄인들이야 하며 정죄합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크리스찬이 아닙니다.
크리스찬은 양이라고 합니다.
목자의 돌봄이 있어야 사는 동물입니다.
야생 양은 그냥 놔두면 6년 되면 죽는다고 합니다.
죽는 이유는 털때문에 눌려서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서 털을 깍아주면 10년 20년 산다고 합니다.
양은 털을 깍여야 합니다. 털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털 깍아서 이웃에게 복을 나누어야 합니다.
나 혼자 살겠다고 하면 6년 살다 죽습니다.
털좀 깍여라, 희생하여라. 나누어라. 전하여라. 돌아봐라.
이렇게 사명을 다하면 자기도 살고 이웃도 살리는 것입니다.
17-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선민의식으로 살지말고 사명의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 털을 깍여야 하는데 남의 털까지 붙여놓으면 그것은 양이 아닙니다.
나를 강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살길은 죽어라 불신자들을 살려내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털을 깍여라, 죽어라. 녹아져라. 엎드려라. 희생하라.
영혼들을 살려내는 사명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불신자들이 불쌍하게 보이고 그들을 살려내는 일에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21-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나 자신을 강화시키는 일을 하면 바리새인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너 때문에 하나님이 욕먹는다는 것입니다.
2. 바리새인이 되지 않으려면 예배자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할례 했느냐 안했느냐 따집니다.
하나님은 겉모습만 변화되면 안됩니다. 속이 변해야 합니다.
속 사람이 새로워진 사람은 하나님을 안에 모신사람입니다.
은혜의 근원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것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예배는 속 사람을 뒤집는 시간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말씀을 주어서 말씀이 들어와서 나의 본질을 바꾸십니다.
25-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속사람이 바꾸어진 사람은 예배에 목숨을 겁니다.
예배속에 푹 빠지면 사람은 순해지고 진실해 지고 희생하고 품어줍니다.
"나의 아저씨"란 드라마를 보면 박동훈(이선균) 부장이 나오고
불쌍한 아이유가 나오는데 이유없이 불륜없이 그냥 도와 줍니다.
박동훈 부장님이 약자편에 섭니다.
배우 이선균을 보면 어른이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드라마 내내 아이유가 웃지 않습니다.
마지막 화면에 아이유가 한번 웃습니다.
외국인들이 극찬합니다. 내면을 텃치해주는 드리마다.
3. 종교인에서 벗어나려면 사명자로 사는 것입니다.
크리스찬이란 속이 바뀌는 것입니다.
예배하면 속이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껍데기만 믿는척 합니다. 이면적이지 않습니다.
컽모습이 아니라 속이 중요하고 영이 중요합니다.
칭찬이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한마디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분을 마음을 다해 예배하는 자는
절대로 바리새인이 될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이 크리스찬이라고 생각하는데 바리새인들이 더 많습니다.
여러분들 내가 죽으면 천국 갈것 같지만
만약에 바리새인으로 사시면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 다는 것은 내가 백기를 드는 것입니다.
니의 의를 내려놓고 내 공로를 다 내려 놓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 의로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 졌습니다.
우리는 예배하러 나올때마다 감격하고 나와야 합니다.
유대인은 야곱의 네째 아들 유다에게 나왔습니다.
유다란 이름의 뜻을 하나님을 찬송=칭찬하다란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할때 힘을 다해야 하고 뜨거운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찬양할때 어두움의 영들이 다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컽과 속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가는 곳마다 세상을 흔드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을 좌지 우지 하는 악한 영들이 쫓겨가야 하는 것입니다.
잠자는 자들. 세상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깨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는 증인들입니다.
예배만이 우리 속을 변화시키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능력되시고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배 속에서 새힘을 받고 치유받고 영적 능력을 얻어가시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