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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up the cross

by samoa 2024. 8. 31.

 

십자가 진다는 것(요19:17-42)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감정처리를 하지 않고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담담하게 표현합니다. 수식어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명을 완수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17-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1.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내 뜻대로 안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각자가 주신 십자가를 지고 좇아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 뜻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내려 놓는 것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내 뜻대로 안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내 뜻대로 내 뜻대로 하면 허송세월하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 십자가 위에 패를 하나 붙여놉니다. 

19-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이라 폐를 붙인 이유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복수를 한 것입니다. 

자기 자존심 세우고 명분 세우는 일을 합니다. 

우리도 싸우는 대부분의 뿌리는 자존심과 명분세우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자존심 세우고 유대 지도자들에게 한방 먹인 것입니다.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나의 최고의 원수가 자기중심, 이기주의,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로마 군병들을 예수님의 겉옷을 네쪽으로 나누어서 가져갑니다. 

속옷은 통째로 되어서 제비 뽑아서 가져 갑니다. 

예수님은 옷이 다 벗겨진 벌거벗겨졌습니다. 

떡 고물 챙기는 모습입니다. 

 

23-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죽음 앞에 놓여 있을때도 자기 욕심만 챙기느라 정신 없습니다. 

십자가 아래서 세 종류로 나뉩니다. 

빌라도처럼 살든지 대제사장들처럼 살든지 군병들처럼 살든지 

자기 중심성이 무서운 것입니다. 

만약 배우자가 죽었을때 아내들이 웁니다. 

왜 웁니까? 남편때문에 울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웁니다. 

먼저 가면 나 어떻게 살라고 울음의 핵심은 나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나입니다. 누가 생활비 갖다 주나 탄식합니다. 

인간은 항상 자기입니다.  나를 떠나지 못합니다.

최고의 원수가 나입니다. 자기의 처량한 모습 때문에 웁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거짓말도 하고 과장도 하고 가면도 씁니다. 

우리가 초라하지 않고 영광스러우려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준 영혼을 품고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2. 십자가를 지는 것은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나를 해하고 아프게 하는 가족들을 통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가족을 내 팽개치면 십자가 지는 것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왜 이런 고난을 주셨는지 답을 주지 않습니다. 

욥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겪으면서 깨닫을 것은

하나님은 내 생각보다 엄청 크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귀로만 들었더니 이제 눈으로 본다고 고백합니다. 

이 사실을 믿을때 나의 현실을 감사로 받아 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되어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의 모든 것을 이해가 안되어도 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하고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이 징징대면서 일을 해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지혜로운 인생은 이해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고 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허망함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도 자기 중심으로 사는 종교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서 아둥바둥대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25-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가족들은 끝까지 십자가 밑을 떠나지 않습니다. 

어머니, 이모들은 이해하고  믿고 맡기고 온 것입니다. 

가족은 선택이 아닙니다. 맡겨진 사람들이 가족인 것입니다. 

좋고 나쁘고가 없습니다.  가족은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은 다 맡겨진 것입니다.

엄마 아빠를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은 주어진 것입니다. 

새로운 가족이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이 맡겨진 새로운 가족들입니다. 

교회에서는 자기 뜻을 들러내면 바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름받은 새가족으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 가족인 것입니다. 

이교회 저교회 전전하며 쇼윈도 하는 사람들은

영적인 가족이 뭔지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살리려고 3년동안 공생애를 사셨습니다. 

천국길을 여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가시면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뜻은 내가 죄값을 죽음으로 다 갚았다.  

테텔레스타이,  다 갚았다.  영어로 잇 이즈 피니쉬 입니다. 

 

누구든지 십자가 아래 나오면 죄사함 받고 새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과 원수된 나를 화해시킨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들이 십자가를 믿고 나오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케 되었습니다. 이웃과 화평케 되었습니다. 

화평이란 예수님이 값을 치루셔서 주어진 값진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이 들어가면 그 공동체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화평케하려고 죽으러 오셨습니다. 

윤리 도덕 지키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화평케 하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늘나라 백성으로 살게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28-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은 죽으시고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자아(내생각)가 신앙생활하는데 가장 큰 원수입니다. 

자아로 살지 말고 믿고 맡기고 따라가야 합니다. 

내 뜻을 부인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내 뜻대로 안되면 좌절하고 내 뜻대로 되면 교만해 집니다. 

주님과 동행하려면 모든 것을 맡기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자아(내생각)가 죽지 않으면 평생 걸림돌이 되어 넘어집니다. 

자아가 못 박혀야 신앙생활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3. 십자가를 지는것은 내려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들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심령이 파산된 사람들입니다 . 자아가 죽은 사람들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애통하는 것입니다.

나는 의지의 사나이니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발버둥 치지만 안되는 것입니다. 

안되고 안되니까 울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가서 맡기는 것입니다. 

 

파산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울수 밖에 없습니다. 

병이 걸렸는데 의사가 가망이 없다고 합니다. 

사업하려는데 돈 빌리는 곳도 다 막혀서 가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울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란 길들여 진다는 뜻인데 맡기는 자란 뜻입니다.

우리 인생의 복은 안되고 안되어서 하나님께 맡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온유한 자란 하나님께 맡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죽고 죽고 죽으니까 내 인생이 말씀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삭은 안되고 안되어서 하나님께 맡기니까 복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내 힘 가지고 안되고 안되어서 주님께 맡기니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삭은 복이 많아서 안되고 안되어서 하나님께 맡겼더니 땅을 차지하더라. 

내가 죽어야 복을 받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내 힘 가지고 하려다가 안되고 안되어서 주님께 맡기니까 되더라는 것입니다. 

죽고 죽어서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이끌어 가십니다. 

내 자아가 죽어야  말씀대로 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의탁하니까 하나님께서 다 이루더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약속들이 사소한 것까지도 다 이루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야곱도 자아가 죽고 하나님께 맡겨더니 아브라함과 약속했던 것들이

하나님이 이루시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그것이 온유한 인생이더라는 것입니다. 

 

31-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이 사람들은 말씀을 밥먹듯이 어기는 자들인데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치우고 안식을 하자고 합니다. 

이들이 하는 일이 꼴보기 싫어도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의 뜻을 이룬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안식의 주인이 예수님인데  유대인들은 내가 안식을 지킨다고 합니다. 

주님 안에 안식이 있는데  주님 밖에 안식을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안식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맡기는 것이 안식입니다. 

6일동안 일했는데 모자라니까 7일째 또 일을 합니다.  

이들이 말씀을 어기면서 안식을 지킨다고 착각합니다. 

나중에 결산하고 보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맡기면 하나님의 뜻은 성취되고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빨리 운명하셨습니다. 

양쪽에 강도 두명이 있고 가운데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강도의 이미지로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십자가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십자가 죽음은 말려서 죽이는 잔인한 사형법입니다. 

손목에 못을 박고 발에 못을 박아서 피를 모두 쏟게 해서 죽입니다. 

예수님이 빨리 돌아가셔서 뼈를 다 꺽지 않았습니다. 

유월절 어린양도 뼈를 하나도 꺽지 안니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이심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햐나님께 맡기면 성경에서 약속하신 말씀들이 다 이루어 지더라는 것입니다.

32-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이 나오더라

35-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맡기니까 하나님이 말씀을 다 이루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명을 위해서 살아가고 나머지는 다 맡기면 됩니다. 

나를 주님께 맡기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십자가를 만나야만 컴밍아웃(숨었다가 드러낸다)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아리마데 요셉과 디고데모란 사람이 숨어서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위에 숨어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해서입니다. 

내 권리를 위해서 주님을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모든 권리와 부는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그것을 모릅니다. 

이 사람들이 컴잉 아웃이 되는 때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만나니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만나면 숨지 못하고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기 싫어하는 마음은 내 속에 마귀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복은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것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깨지고 교만이 깨지고 죄를 토로하고 주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팔복의 마지막  복은 의를 위해서 박해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이 박해 받으며 끝나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로 화목케 하는 자로 만드시려고 오셨습ㄴ디. 

우리는 이 세상에 화평케 하는 자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직첵입니다. 

화목케 하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우리는 화목케 하는 자입니다. 

화목케 하는 자는 값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값을 지불하는 것은 십자가 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원인은 다 사람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던지 믿는 친구에게 조롱당하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죽을것 같은 때가 언제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할때입니다. 

 

화해하는 일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사람속에 들어가서 하는 것입니다.

사람 만나기 싫다고 자연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화목케 하려면 무조건 박해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분쟁이 있는 곳에 아픔이 있는 곳에 들어가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명을 이루며 사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나에게 주신 사명을 다 이루며 살앗다고 고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

 

마지막 까지 사명다하고 충성다하다가 확 가버리는 것이 복입니다. 

예수님도 베드로도 확 가벼렸습니다.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것이 복이랍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아리마데 요셉과 디고데모는 숨어서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십자가 앞에서 확 드러납니다. 박해 받았을 것입니다.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녹아지라는 것입니다. 

소금되라는 뜻은 십자가를 지라는 뜻입니다. 

내가 죽으면 고집도 자존심도 욕심도 다 사라집니다.

십자가를 지시므로 주님을 따라 다 내려 놓을 수 있는

승리자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