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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s of development of faith

by samoa 2024. 5. 18.

믿음의 발전단계(요11:17-44)

 

신앙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신앙에도 성장이 있습니다. 

신앙도 발전의 단계가 있습니다. 

믿음도 어린아이의 믿음에서

장성한 어른의 믿음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오늘 마르다와 마리아를 통하여 믿음의 단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마르다 가정은 부모님이 없이 

오빠 나사로와 동생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오빠가 부모님 역할을 하며 세 남매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지하던 나사로가 죽을 병에 들었습니다.

이 가정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내어 

오라버니가 죽게 되었음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소식을 듣고 2틀을 더 유하고 나서 찾아갑니다. 

당사자들은 얼마나 다급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너무 느긋하게 받아 들입니다.

이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렸다가 나흘째 되어 도착합니다. 

예수님이 도착하니까 마르다가 먼저 가서 맞이합니다.

그리고 주위 이웃들이 많이 찾아 왔습니다. 

19-많은 유대인이 마르다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마르다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이 가정은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때 이웃들이 하나도 없는 것 만큼 쓸쓸한 것은 없습니다.

어려움을 당해보면 교회라는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수 있습니다.  

본문은 마르다의 믿음을 분석하면 3단계 믿음이 있습니다. 

첫단계 조건적믿음,   두번째 교리적 믿음,  세째단계 채험적 믿음이 있습니다. 

 

1. 조건적 믿음의 단계 

21-마르다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마르다의 믿음은 조건적 믿음입니다.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약간의 기대감 섭섭함이 섞여 있습니다. 

마르다는 자기 중심적입니다. 문제 중심입니다. 존건적 믿음입니다. 

마르다의 믿음은 참된 믿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쩡한 믿음은 상황에 관계없이 받아들이는 것 입니다. 

진짜 믿음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절대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 인본주의 입니다. 

내가 해석하는 것만 받아들입니다. 자기 멋대로 해석합니다. 

사실을 놓고 내가 해석합니다.  해석은 백인백색입니다. 

자기 멋대로 해석합니다. 

세상에는 진영논리가 통합니다. 내편이냐 저쪽편이냐?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맞다 틀리다가 달라 집니다. 

뿌리에는 인본주의 입니다.  상황과 조건을 따라갑니다. 

 

믿음의 사람 백부장의 믿음은 하인이 중풍병에 걸려 사경을 헤멥니다. 

종을 사랑하니 안타까워서 예수님께 나가서 고쳐 주실것을 부탁합니다. 

예수님이 기특해서 집으로 가자고 하니까  그럴필요 없습니다. 

저도 제 아래 부하들이 있어서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갑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욍이신데 저희 집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말씀만 하시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이 소리를 들은 예수님은 내가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간은 자기의 한계를 알기에 자기 능력을 따집니다. 

돈이 결정하게 하는 것도 조건적 믿음입니다. 

사람보고 일합니다. 조건적 믿음입니다. 

나이에 영향을 받는 것도 조건적 믿음니다. (이 나이에 내가 하랴!)

믿음에는 나이에 관계 없습니다. 

모세  갈렙은 80세, 84세도 일하잖아요. 

내 나이가 20대라면 30대라면 이런 소리 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힘주시면 나이에 관계 없이 일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120살인데도 기력이 쇠하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2. 교리적 믿음, 이론적 믿음의 단계

23-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교리가 중요합니다. 교리는 신앙의 뼈대입니다.

교리가 잘못되면 신앙이 왔다 갔다 합니다. 

마르다는 교리가 뚜렷했습니다.  신조이고 뼈대입니다. 

교리적 믿음이란 뼈만 있는 것입니다.  살이 없습니다. 

마귀는 이원론입니다. 마귀는 분리시키는 놈입니다. 

인간을 육신과 영으로 나눕니다.  

성령은 영과 육이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성령이 나타나시면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성령이 임하면 회개시키고 돌이키게 합니다. 

성령님의 감동에 순종하면 기쁨이 생깁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기쁨도 없고 평안도 없습니다. 

 

구원받은 것과 성령 받는 것을 분리하면 안됩니다. 

예수님 믿는데 삶의 변화가 없다면 

이유는 예수님을 어쩡쩡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리적 믿음입니다. 

지식적인 믿음은 삶의 변화가 없습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이 뜨겁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믿는다고 하지 않고 아나이다.  지식적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믿는 다는 고백도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힘을 주셔야 내가 믿습니다. 고백할 수 있습니다. 

교리적 믿음은 머리로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 삶의 변화는 없는 믿음입니다. 

 

3. 체험적 믿음의 단계

이 땅과 천국이 하나입니다. 현실과 약속이 하나입니다. 

우리는 밤마다 천국 가는 연습하는 것입니다. 

눈떴는데  예수님이 보이면 천국인 것입니다. 

부활이란 이 세상과 천국이 연결되어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삶과 영생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간과 조건에 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땅에서 살면서 부활을 사는 것입니다. 

부활체험을 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이 땅에서도 체험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제일 좋은 때가 영원한 곳 천국입니다. 

지옥은 최고의 고통과 최고의 아픔이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아는 것은 갈등이 없습니다.  지식에는 갈등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에는 갈등이 있습니다.  

믿음과 삶은 하나이기에 갈등이 있습니다. 

이론적 믿음은 갈등이 없습니다. 

체험적 믿음은 갈등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은  삶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는 구원자이시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27-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어느 교회에서 가믐때 비오기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교회 문앞에서 성도들을 살폈습니다. 

무엇을 보셨습니까? 우산을 들고 왔나 살폈습니다. 

진짜 믿으면 비오니까 우산 가지고 와야 하는 것입니다. 

비 오기를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한다고 믿으면 갈때는 비가 올것입니다.

 

디엘 무디 목사님도 자신도 믿음이 자꾸 약해지니까? 

기도를 하는데 자신의 기도가 자꾸 달라는 기도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심령이 메말라 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이유는 말씀을 보지 않아서입니다. 

롬10:17-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대부분 우리는 필요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필요만 위해서 기도하면 공허해 집니다. 

그런데 말씀 듣고 기도해야 공허해 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은 대로 기도해야 삶이 뜨거워집니다. 

필요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구하고 말씀을 구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조건부 믿음에서 말씀을 구하는 믿음으로 바뀔때부터 

심령이 충만해지고 기쁨이 충만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나서부터  말씀을 구하면서

체험 믿음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무덤문을 열라고 하십니다. 

마르다의 미성숙에서 성숙한 단계로 발전합니다. 

마리아의 믿음을 살펴보면 

순종의 태도가 있었고 예배를 드리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즉시 순종합니다. 

28-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마리아의 믿음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즉시 일어나 순종합니다. 

순종에는 갈등이 없습니다. 방황이 없습니다. 

어설프게 믿으니까 갈까 말까 갈등이 있고 방황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내 고집을 꺽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신앙인은 마리아를 닮아 가야 합니다. 

 

마리아의 예배의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32-마리아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여기서 마리아의 태도를 보면 먼저 발 앞에 엎드리어 예배 했다는 것입니다. 

예배하고 봉사하면 시험들지 않습니다.

예배하고 찬송해야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드린 자를 결코 빈손으로 돌려 보내지 않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배 드리고 갈때 그냥 보내지 않고 사마리아에 있는 

빌립을 보내어 말씀을 해석해 주고 침례 주어서 보내십니다. 

 

우리가 예배자가 되어 살면 하나님의 능력이 떠나지 않습니다. 

예배 다음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24절기 중에 곡우가 있는데 씨뿌리고 난후에 오는 비를 곡우라고 합니다. 

말씀을 먹고 난 후에 주시는 은혜가 곡우의 은혜입니다. 

곡우전에 따는 녹차를 우전차라고 합니다. 다른때 따는 차와 다릅니다. 

부활절 전에는 우전차를 마시면 좋습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세를 가지니까 은혜의 단비를 주십니다. 

마리아는 되는 여자입니다.  순종하니까 갈등도 없고 더하는 인생입니다. 

은혜가 넘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순종과 예배의 신앙이었습니다. 

 

에수님이 나사로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나사로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불이 있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교회 특징은 눈물이 있고 불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아픈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하나님이 아파 하십니다. 

자녀를 키워보면 아파합니다.  사랑은 아픈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아픈 것이 오히려 기쁨을 주고 사랑을 배우게 합니다. 

예수님도 나사로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33-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죽음의 문을 열면 나사로가 살아나 걸어나옵니다. 

다시 사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개개인에게 체험 되어지시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